친구이야기/친구야!(여자만)

친구의 전화

pjss 2011. 10. 4. 15:11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친구의 전화

 

퇴근하는 길에 전화벨이 울리더니 받으려 하자 끊어졌다.

내가 걸어볼까 하다가 잘 모르는 번호이기에 그냥 두었다.

저녁 무렵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다시 아까 그 번호가 떴다.

 

“여보세요?”

“점숙아! 나 안순희야.”

“안순이?”

‘안순이는 성애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왜 갑자기 안순이라고 할까?’

 

나는 그 순간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 중에

안순이라는 또 다른 사람이 있나를 생각하며 잠시 머리를 굴렸다.

 

“병자, 대강 사는.. 기억하니?”

“아~ 병자, 그럼 기억 하고말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병자는 중3때부터 순희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단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병자밖에 없었다.

병자는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제주도 서귀포에 정착한 지 10 여년이 되었으며

아들 한 명과 함께 셋이서 살고 있단다.

 

울 엄마와 친구인 병자의 엄마는 작년 12월에 운명을 하시면서

친구인 울 엄마를 찾았더란다.

조금만 일찍 연락처를 알았더라면

내가 엄마를 모시고 찾아뵐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강 대동의원에서 속눈썹 때문에 눈 수술을 하고 누워있던 나의 병문안을 왔더란다.

그때 밤톨 같은 것을 눈꺼풀 위에 올려놓고 있던 나의 눈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궁금하여 카페에 올려져있는 사진을 보았지만

선글라스를 썼거나 희미하여 잘 안 보인다 했다.

 

“얘, 그 쌍커풀 수술 덕분에 내가 을매나 이뻐졌는지 아니?”

“하하하, 그래? 그러니 더 보고 싶다.”

 

나이를 먹어가니 고향 친구들이 그립단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깊은 정을 나누기 어렵더란다.

그래서 고향 친구가 최고더란다.

 

좀더 일찍 전화연락하며 만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도

이제라도 만났으니 자주 얼굴 보고 연락하며 살자고 했다.

이제 친구가 사는 제주도에도 놀러가고

우리가 사는 광주, 순천 고흥에도 놀러오기로 하였다.

 

우리의 호남권 친구들 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6월 모임에 함께 하면 좋겠다고 했다.

어릴 적 친구에 대한 기억들을 참 많이도 기억하고 있던

친구의 들뜬 목소리가 전화를 끊고도 계속 들려오는 듯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다 전화를 마친 나를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하였다.

“참 자네는 인생이 즐겁겠어.”

“왜요?”

“서울, 부산, 인천, 강원도... 전국에 친구들도 많더니만 이제 제주도에 까지...”

“ㅎㅎㅎ그럼 즐겁고말고요.”

“이제 또 돌아다닐 일만 남았구먼~”

애꿎게 나의 잦은 외출을 타박하는 남편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또 한 명의 친구를 찾은 그 순간 난 누구보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