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어쩜 그런 실수를?

pjss 2009. 6. 26. 14:17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어쩜, 그런 실수를?


“난 엄마 아빠랑 놀이동산에 많이 가 보았는데...”

“그래, 그럼 엄마 얼굴 생각나니?”

“네.”

“보고 싶겠다.”

“......”

“아차!”

내가 나의 실수를 알아챈 순간

이미 세은이의 눈가는 젖어들고 있었다.


세은이는 여섯 살에 엄마를 잃고

아빠와 헤어져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하며

영특하기도 하고 사람도 잘 따라서

우리 우도의 작은 공주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세은이를 울린 것이다.

내일 에버랜드에 갈 얘기를 하던 중에

어렸을 때 엄마 아빠랑 놀이동산에 많이 가보았다는 세은이의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엄마의 얼굴이 생각나는지를 묻고는

그런다는 세은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럼 보고 싶겠다고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뱉은 한 마디

“보고 싶겠다.”

‘아니, 어쩜 이런 실수를?’

깜작 놀라며 세은이를 안은 내 팔로 세은이의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소리도 내지 않고

어깨도 들썩이지 않으며

볼을 타고 흘러내려와 내 팔을 적시는 눈물은

마치 내 심장을 뚫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미안해”

“........”

“선생님이 바보다. 선생님이 나쁘다.”

“........”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어리석은 못난 선생인 나는

속 깊은 어린 제자의 용서를 빌며

애써 울음을 그치려는 세은이를 품에 꼬~옥 안고 있을 수밖에.......


한참을 지나 눈물을 닦고 씨~익 웃는 세은이의 얼굴을

난 차마 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린 제자의 아픈 곳을 건드려 울리기나 하는 못나고 어리석은 교사이기에


<홈페이지에서 세은이와 주고받은 편지>

-세은이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 해서 그렇게 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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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아!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세은에게 실수 한 거 미안해.

선생님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세은이는 속상했지?

미안,

다시 한 번 사과할게. 용서해 주렴


내일은 용인 에버랜드에 가는 날이지?

오늘 준비물 잘 챙기고

내일 아침 약속 시각 잘 지켜서

약속한 장소에 나오도록 해라.


그리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세은이를 사랑하는 선생님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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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이쁜 우리 엄마!


엄마, 오늘 실수 한 거 다 잊고

이제 즐거운 공부해요.

아까는 많이 속상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리고 내일 에버랜드 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짧지만 얼굴 활짝 펴고 웃어요.

왜? 그럼 모두가 잘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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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속 깊은 나의 어린 제자의 편지를 읽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솔직히 오늘의 나의 행동은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쩜 그런 실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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