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국화를 자르며

pjss 2009. 6. 26. 12:09

2009년 6월 25일 목요일


국화를 자르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반복하고

그 선택에 대한 희비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기쁨이 따를 때 우리는 행복해 하고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절실한 후회를 하며.......


우리 학교 화단에

지난봄에 심었던 팬지와 데이지가 시들었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지만

꽃처럼 살아있음과 시듦의 경계가 분명한 것 또한 드물 것이다.

활짝 피어 작은 학교를 화사하게 장식해주던 아름다움도

색깔이 바래고 꽃잎마저 시들고 나니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오히려 천덕꾸러가로 변모했기에

유월 초에 다른 화초로 바꿔 심었다.


여름 화단을 장식할 꽃을 알아보기 위해 화원에 전화하니

여름에 심을 적당한 화초가 없다는 것이었다.

순천 동천의 다리에 피어있는 페츄니아가 예뻐 보여서

그것을 심으면 어떠냐고 했더니

그것은 지난봄에 심어서 피어난 것으로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단다.


그래도 잔디밭에 있는 작은 화단을 비워놓을 수 없기에

무엇이라도 심어야 한다고 했더니

가랑코에를 심으면 어떠냐고 하셨다.


가랑코에는 더위를 잘 견디기는 하지만

물이 많으면 녹아버리는 습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6월 중순에서부터 7월 중순까지가 장마철이니

잘못하면 녹아 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물 빠짐이 좋은 화단이라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랑코에로 결정을 하고 품의서를 올렸다.


가랑코에를 주문해 놓고 다음 날 찾으러 가려는데

화원에서 천화가 왔다.

마침 소국이 왔는데 소국을 내리면 어떻겠느냐고.

장마 때문에 염려할 필요 없겠다 싶어서 소국으로 결정을 하고

남편과 함께 정성을 다해 화단에 심었다.


자주색, 분홍색, 노란색으로

생생하게 피어난 국화 덕분에

잠시나마 시들했던 학교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등교하던 아이들도 동료 교사들도

화단에 피어난 꽃을 보며 예쁘고 보기 좋다며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뿌리를 내리면서 점점 더 강하고 싱싱하게 피어나야 할 국화가

어쩐지 날로 수척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꽃잎이 말라버리는 것이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가뭄 때문!


날마다 이 주사님께서 물을 주었지만

바짝 마른 땅에서 쨍쨍 내리 쬐는 땡볕을 견디지 못하고

꽃잎이 다 타버린 것이었다.

‘아, 이를 어째?

이렇게 장마가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폭염주의보까지 내릴 줄 알았다면

그냥 가랑코에를 심는 건데......‘

순간의 선택을 절실히 후회해봤자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여름방학 전 까지는 환하게 피어주리라 기대했었는데

말라 시들어빠진 꽃송이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하였다.

며칠 동안을 버티다 급기야는 오늘 가위를 들었다.

다행히도 줄기와 이파리는 싱싱하니

다른 꽃대가 돋아서 꽃을 피워주길 기대하며

시든 꽃대를 잘라주었다.


하나하나 시든 꽃대를 자를 때

마치 나의 손가락을 자른 것처럼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의 희망이 없기에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사람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후회를 좀더 줄일 수 있을 텐데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기에

순간의 선택에 절망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사람 살아가는 인생이겠지만


국화를 자르며

내게 초능력이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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