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 가득한' 친구 돕기'
『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4년 1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선생님! 다 찾아보아도 없는데요."
"얘들이 어디 갔지?"
"교문 앞 문구사엔 가 봤니?"
"네."
"씨름장엔?"
"거기에도 없어요?"
"...."
"선생님! 걔들이 와요."
"그래? 어디..."
"저기∼ 세준이가 데리고 오는데요."
"어디에서 찾았니?"
"저기 학교 옆에 보은어린이 집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어요."
"휴∼"
난 통합학급을 담임하고 있다. 통합학급이란 특수학급 아이들이 일반학급에 속해 함께 생활하는 학급을 말한다. 학년초에 우리 학교에 특수학급이 1 반 편성되었는데 우리 4 학년에 3 명의 아이들이 특수 학급 아동이다. 그런데 3 명을 모두 한 학급에 편성하라는 도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우리 반에 3 명이 모두 편성 된 것이다.
난 특수학급 아이들을 한 번도 지도해 본 적이 없고 특수아 지도를 위한 어떠한 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학년초에 반 편성을 하면서 각 반에 1 명씩 속해 있는 아이들을 한 반에 편성해야하는 상황이라 갑작스레 통합학급을 담임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특별한 신체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정신 지체와 정서 불안으로 판정이 된 아이들이다. 솔직히 처음에 맡을 때만 해도 편성은 우리 반에 되어있어도 모든 수업과 생활은 특수반 교실에서 이루어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3 월 한 달간은 적응 기간이라 하루 종일 일반 학급에서 생활하며 수업을 해야한다고 했다. 학년초에 욕심이 많은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문한다. 약속장 쓰기부터 모둠 활동, 일감 통과제, 독서학습 발표회, 스스로 열고 닫는 하루, 이 주일의 노래부르기, 아침활동과 점심 시간의 활동 등 일반 아이들도 적응하기 힘든 우리 학급에 그 아이들 3 명을 적응시킨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3 명을 교실에 앉혀 놓고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하기 짝이 없는데, 한껏 분위기를 잡아서 무엇인가 시도를 해보려고 하면 엉뚱한 말이나 동작으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기 일쑤이고, 그 중에 한 명은 아예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교실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거나, 창턱에 걸터앉아 바깥을 내다보기 아니면 어느새 교실에서 사라져 버리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곤 했다.
교실을 흥미 없어 하는 아이들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흥미를 가지고 활동하게 할 수 있을까?' 날마다 고민하며 모둠에서 함께 활동을 하게도 해보고, 그게 잘 안되면 나름대로 수준별 교육을 해본다고 따로 자리를 만들어 생활하게 해보기도 했지만 그 아이들을 교실에 잡아놓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라도 그 아이들의 관심을 40 분씩 집중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아이들은 틈만 나면 아니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상관하지 않고 이제 단체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곤 했다. 아이들이 없어질 때마다 찾으러 다니기를 수십 번 결국 우리 반 아이들은 학급 어린이회의를 통해 당번을 정해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도망을 못 가도록 지키기로 했지만 수업시간이 시작 될 때마다 그 아이들을 찾느라 5 분 10분 늦는 것은 보통이었다. 하교시간에도 교문밖에 있는 체육관까지 데려다 주고야 비로소 안심을 하는 등 3월 한 달 동안이 그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다보니 금세 지나가 버렸다.
4 월이 되어 특수반 담임선생님이 교육을 받고 돌아오셨다. 난 이제야 그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과 우리 반 아이들도 좀더 안정된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되도록 많은 시간을 원적학급에서 보내야 한다는 방침으로 특수반 담임 선생님은 한 명은 1-4교시 동안 나머지 2 명은 3-4교시에만 특수반으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 반에서 공부하고 생활해야된다고 했다.
즉 국어와 수학 시간을 제외한 모든 교과활동이 원적학급인 우리 교실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다. 특수학급의 운영방침이 그러하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1학기를 보내면서 난 내 자신의 무능함으로 한없이 괴로운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실질적으로 교실에서 학습에 부진 요인이 있는 몇몇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 아이들만을 위한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시에 수업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1학기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교실에 얌전히 있어주면 하교시간에 사탕을 한 개씩 주기로 약속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일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학기 동안 그 많은 날들을 난 그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이 보내 버린 것이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의 과정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도 애써 외면했고, 교실에 잡아두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 그리기, 글씨 쓰기, 종이 접기나 오리기, 찰흙으로 만들기 등 그 시간 수업 활동과 관계없는 일감을 주기도 했다. 그나마 방학동안에 통합학급 교사들의 연수가 있었는데도 영어 연수와 겹치는 바람에 연수의 기회마저 갖지도 못하고 맞이한 2학기!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만 무거울 뿐 또다시 내겐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 아이들 셋 중에서 두 명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하여 학습에 필요한 준비물이나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한 명의 부모는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많아서 교사와 많은 얘기도 나누고, 또 우리 반에서 활용하는 약속장 사용은 못하지만 알림장이라도 꼭 활용을 하여 그 날의 일과와 준비물 등을 기록해 가면 부모님이 잘 챙겨서 보내곤 하였다.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과학 시간에 '동물의 종류를 분류하고 특징을 조사해 오기'라는 학습지 해결 과제가 있었는데 그 날도 그 아이의 엄마는 우리 반에서 나누어준 학습지는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는지 새로운 종이에다 애써 동물을 조사하고 특징을 써서 보내 온 것이다. 어느 때보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와 불쑥 내민 과제물 종이를 보고 정말 숙제를 잘해왔다고 칭찬을 해주기는 했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그 엄마의 마음을 내가 날마다 배신하고 있는 것만 같아 또 한번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보다 앞서 가는 우리 반 아이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있으니 그 아이들이 특수반 교실에 가고 없는 3-4교시가 훨씬 마음 편하고 아직도 그 아이들 3 명이 모두 와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면 마음부터 무거워진다. 항상 그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학급이나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면 깜박 잊고 챙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반 아이들은 나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소풍을 갈 때나 수련활동, 봉사활동, 운동회, 학예회 등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면 한참 행사를 진행하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 아이들을 찾으면 언제나 우리 반들 틈에서 섞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서 보다 야외 행사가 있을 때면 난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오히려 그 아이들이 나의 수제자(?)가 된다. 학교에서와 달리 우리 반 아이들이 특별하게 챙기기도 하지만 그 아이들 또한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 때문인지 아이들 속에 잘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등산을 갔다 내려올 때는 누구보다도 쓰레기를 잘 주워 늘 칭찬을 받기도 한다. 더구나 3학년 때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야물어졌다는 동료 교사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아이들을 챙기는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임수화!
소풍을 갈 때나 등산을 깔 때 운동회를 하거나 체험 학습 활동을 할 때면 언제나 우리 반은 그 아이들을 누가 챙길 것인지 의논을 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다소 꺼리는 듯 하던 아이들이 이젠 제법 서로 챙기겠다고 나서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외 없이 선뜻 손을 들어 자신이 챙기겠다고 나서는 우리 수화, 학급의 다른 일에도 잘 나서서 어려움을 마다 않고 일하는 수화이지만 특히 그 아이들을 챙기는 데에는 무슨 마력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 아이들도 다른 누구보다도 수화의 말을 잘 따르고 수화가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마치 누나가 동생들을 대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2학기 임원선거에 수화가 회장으로 당선되는데 그 아이들의 표가 크게 협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특수반에서 저희들끼리 반장을 뽑는 데도 임수화를 써서 냈을 정도라니 수화의 아이들 챙기는 솜씨는 분명 보통이 아니다.
다음은 친구 찾기 일등 공신 이세준!
우리 세준이가 그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믿음직한 덩치 때문이었다. 맨 처음 아이들이 사라지자 누군가 찾으러 가야했고 덩치 큰 세준이가 지목이 되었던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흘리는 큰 덩치의 세준이가 그 아이들을 몰고(?) 교실로 들어오는 폼은 정말 가관이다. 오지 않으려고 꽁무니를 빼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다시피 데리고 오는 폼이라니.... 그래도 그 날 이후 세준이는 아이들이 사라질 때마다 어김없이 찾으러 나섰고 어느 때는 아이들은 교실에 있는데 세준이 혼자 아이들을 찾느라 사라진 적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 찾기에 열심이다.
도움 주며 배우는 '배려하는 마음'
누구보다도 해맑은 눈을 가진 나의 아이들, 소풍날이면 맨 먼저 내 손에 과자를 쥐어주는 그 아이들의 따스한 마음이 얼마나 큰 지 알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이 무엇을 바라는 지도 읽지 못하는 나는 분명 바보 선생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한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챙기고 도와주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우리 반 아이들의 스승이지 않겠는가? 그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일년을 보내버린 부끄러운 나의 고백이 통합 학급을 담임하는 다른 모든 선생님들의 수고에 욕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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