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나의 학급경영기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붕어 장례식」

pjss 2008. 6. 29. 15:57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붕어 장례식」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11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붕어가 죽었어요

"으아∼ 붕어가 죽었다."
"어머나!"
"갖다 버릴까요?"
"안돼, 묻어줘야 해."
"에이 징그러워.."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아이들이 어항주변에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소란을 피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며 인사를 하자
"선생님! 붕어가 죽었어요."
대현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근심 어린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무심코 겪는 일들도 조금만 생각을 더하면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훌륭한 자료로 활용할 수가 있다. 교실에서 키우던 금붕어가 죽었는데 그 보다 더 귀한(?)자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붕어의 죽음은 생명을 경시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언젠가 교육 잡지에서 보았던 「붕어장례식」때문이었다. 그래서 '아, 붕어장례식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고 또 그땐 무심코 읽어 어떤 절차에 의해서 어떻게 진행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우선 진정시키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하지?'
'이거 잘못하면 장난스러워 질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도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하는데 유난히도 장난기가 심한 청개구리 우리 반들을 어떻게 하면 엄숙한 분위기로 유도해낼 수 있을지 정말이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자료가 절로 굴러들어(?) 왔는데 놓칠 수는 절대 없다는 생각으로 먼저 나부터 마음을 가다듬었다.

생명은 소중한 것

잠시 후, 나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난 애써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붕어가 죽었군요. 모두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 교실에서 생활한 한 마리의 붕어의 목숨이 다한 날입니다. 붕어 한 마리의 죽음을 우리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소중하듯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생물들의 생명 또한 그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교실에 온 뒤로 우리의 교실을 생동감 있게 해 주고 또 우리에게 보는 즐거움을 안겨주던  붕어가 우리들의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인해 오늘 목숨을 잃었습니다. 붕어에게 우린 모두 진심으로 잘 돌보아주지 못한 잘못을 뉘우치고 미안한 마음으로 장례식을 해 주도록 합시다."  
장례식이란 말에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의아해했다. 순간 나도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분위기를 차분히 가라앉히며 장례식 절차를 설명해 나갔다.

  "먼저 우리 반 모두는 상장(喪章)을 가슴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상장이란 죽음을 슬퍼하고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검정색 색종이를 오려서 왼쪽 가슴에 달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큰 소리로 장난을 하거나 흥겨운 노래를 삼가고 애도를 표하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우리 반을 대표하는 반장을 상주로 정하고 회장에게 장례위원장이라는 직함을 준다. 장례위원장은 모든 장례식을 위한 준비를 하는데 먼저 필요한 준비물과 절차를 알려준다. 각 모둠의 도우미들은 장례위원이 되어 장례위원장과 함께 준비를 하도록 한다.

붕어 장례식 준비는 이렇게

·죽은 붕어는 보건실에서 가져온 거즈에 싸서 보관하고, 마닐라지로 붕어의 크기에 맞는 작고 예쁜 관을 만든다.
·장례식에 사용할 병풍은 각 모둠에서 두 폭씩 나누어 붕어들의 평소 생활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려 붕어와 맞게 작은 사이즈로 특별 제작한다.
·두 개의 종이컵을 예쁘게 오려 접어 향로를 만들고 향과 성냥을 준비한다. 흰색이나 노란 색의 국화꽃도 서너 송이 미리 준비해 둔다.
·평소에 반에서 글짓기를 잘하는 아이에게 조사를 짓도록 한다. 조사는 아이들이 처음  쓴 것이라 교사의 각별한 지도가 있어야 한다. 조사를 낭독할 때 아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하므로.......
·노래 모니터들은 작별 노래를 개사하여 조가를 부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미술 모니터 에게는 평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를 시켜 붕어의 초상화도 그려 작은 액자에 담아 검은 리본을 묶어 두게 한다.
·회장은 남학생 서너 명과 함께 교정을 돌아보아 붕어를 묻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 미리 땅을 파 놓도록 한다.

함께 하는 애도의 행렬

  그날따라 마치 붕어의 죽음을 슬퍼하기나 하듯이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를 내리며 하늘도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우리들은 붕어 장례식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운동장 가의 소나무를 향하여 긴 행렬을 이루었다. 장례식을 교실에서 할까? 묻어줄 장소에 가서 할까? 망설였으나 모든 아이들이 직접 묻어주는 것까지 참여해서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정한 게 운동장 가의 소나무 아래에 정해진 무덤 가이다. 붕어의 초상화를 든 아이가 맨 앞장을 서고 다음에 붕어의 관을 든 아이와 보조 어린이 셋, 상주, 향로를 든 아이, 병풍을 든 아이, 꽃을 든 아이, 조사를 낭독할 아이, 조가를 부를 아이 들이 순서대로 가고 그 뒤를 나머지 학급 원 모두가 따르게 했다. 그리고 맨 뒤에는 마침 대학에서 교생실습 나온 교생선생님이 따랐다. 처음에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며 장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때 교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유도해 내야 한다.  
  소나무 아래에 도착하면 먼저 파 놓은 무덤 앞에 병풍을 치고 붕어를 그 뒤에 내려놓는다. 병풍 앞에 향로를 놓고 향을 피운 뒤 아이들을 무덤 가로 정렬시켜 세운다. 그리고는 붕어 장례식을 하게 된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며 엄숙한 가운데 식이 거행될 수 있도록 주의를 준 뒤 장례위원장인 회장의 사회로 식을 진행한다. 상주가 향을 피우고 나면  
"우리의 친구인 붕어가 오늘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 모두 슬퍼하는 마음으로 붕어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드리겠습니다. 묵념!"
다같이 묵념을 한 다음에 조사를 낭독한다.
"3월 어느 날, 승희가 너희 다섯 마리를 우리 반에 데려와 넌 그 날부터 우리의 친구가 되었지. 우리는 아침에 등교하여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너희들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아졌었단다. 처음엔 우리 반 모두가 서로들 자기 붕어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먹이도 서로 주려고 다투었는데 어느 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이렇게 오늘 죽음을 맞게 되었구나. 너의 죽음은 그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너희들을 보며 즐거워 할 줄만 알았지 우리가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다른 생명체에 무관심하게 살아온 우리들을 나무라고 있구나. 정말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구나.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더 너희들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애썼을 텐데, 그래서 먹이는 안 부족한 지, 물은 깨끗한 지 좀더 관심을 가지고 너희들을 보살폈을 텐데 네가 죽고 나서야 그 걸 깨달았으니 너무나 부끄럽다. 너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남은 너의 친구들이라도 앞으론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을 할게. 우리 때문에 친구들을 두고 혼자서 외로이 길을 떠나는 붕어야! 네가 가는 새로운 세상은 더 넓고 따뜻한 세상이길 바라며 부디 잘 가기를 바란다. 안- 녕!"
  처음엔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아이들도 묵념에 이어서 조사가 낭독되면 조용해지고, 글을 낭독하는 아이가 제 감정에 겨워 울먹이기 시작하면 금새 여기저기서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특히 교생선생님의 훌쩍거림은 아이들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붕어야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지속시키며 조가를 부르면 아이들은 감정에 겨워 채 부르지 못하고 울음바다가 되어 분위기는 극에 다다른다. 드디어 붕어가 들어있는 관을 파놓은 구덩이에 넣고 학급 원 모두가 한 사람씩 나와서 준비한 국화잎을 따서 덮어주게 한다. 그러면 어떤 아이는 슬픔에 겨워 한 참을 멈추어 울기도 한다. 10원짜리 동전을 두세 개 노잣돈으로 넣은 뒤 차례로 돌아가며 흙을 덮고 땅을 편편하게 만든다.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명복을 빈 뒤에 교실로 돌아와 감정이 걷히기 전에 붕어의 죽음부터 장례식까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자세히 정리하여 글을 써 보도록 한다.
  
  아이들은 퉁퉁 부은 빨간 눈을 비벼가며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여 어느 때보다 길게 글을 쓴다. 이때는 편지지를 이용하여 글 쓰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두세 장 쓰기도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차차 글 쓰기에 익숙해지면 7-8 장은 보통으로 쓴다. 붕어 장례식을 마치고 우리 반 지현이는 무려 열한 장의 편지지를 꽉 메우는 긴 글을 써서 나를 놀라게 했다.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을 읽어보면서 난 한 번의 붕어 장례식으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바뀌고, 또 바뀐다 한들 얼마나 지속적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뉘우침과 나 아닌 다른 생명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보살필 줄 알아야겠다는 아이들의 글 모두를 진심으로 믿고 싶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붕어를 묻었던 소나무 아래를 기웃거리는 순수한 우리 아이들의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