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나의 학급경영기

책임감 키우는『일감 통과 제』

pjss 2008. 6. 29. 15:56

책임감 키우는『일감 통과 제』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9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자주적인 생활의 터 잡기

  『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아이들의 바른 생활 습관 형성을 위해 나는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학년초의 첫 만남부터 학년말에 만들어지는 우리 반의 문집이나 CD 앨범에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교사의 통제나 지시가 없어도 아이들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대부분의 요즈음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힘인 '생활력'이 약해 스스로 일을 찾아하기는커녕 자신에게 주어진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감!
  난 학교 생활 속에서 아이들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일감이라고 부른다. 일감이란 학습뿐만 아니라 아침 활동, 당번 활동, 청소 활동,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약속 등 자신이 처리해야하는 모든 일들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 아침 활동 시간부터, 교과 수업 시간, 과제 학습, 준비물, 약속장(일기장) 등 하루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야 하고, 우리 교사들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주어야 한다. 학년초에는 새로운 각오로 아이들도 잘해보려고 애쓰고 우리 교사들도 하나하나 따져가며 점검하여 지적해주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시일이 차츰 지나면서 아이들의 각오도 흐려지고, 교사들도 다소 점검을 소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들의 생활력이 떨어져있기가 쉽다.

  나는 학년초에 아이들과 만나면 여러 가지 덕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데   자주적인 생활태도에 대해 언급을 할 때 그 바탕이 되는 책임감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한다.
" 여러분이 학교에 와서 교육을 받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자주적인 생활태도를 기르기 위함입니다. 자주적인 생활이란 자기 자신의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생활인데, 자주적인 생활의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해내는 책임감입니다."
책임감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해결하는 것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꼭 길러져야하는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임을 강조한 후 책임감이 강한 생활력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일감 통과 제』 운영을 제안한다.

『일감 통과 제』 운영하기

  "자주적인 생활의 바탕이 되는 책임감 있는 생활태도의 형성을 위해서 우리 반에선 『일감 통과 제』를 운영하겠어요. 일감이란 여러분이 학교에 와서 하는 모든 학습활동을 말합니다. 날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학습활동을 다한 후 선생님께 검사를 맡고 통과가 된 사람은 자신의 칸에 체크하세요. 보통 하루에 서너 가지의 일감이 발생할 것인데 하교하기 전에 모두 체크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하교시간까지 체크하지 못하면 남아서 일감을 처리하고 귀가하도록 하세요."
  일감 통과 제를 시작하기 위해선 먼저 A4용지에 학급명단을 작성하고 칸을 여러 개로 나누어  날짜와 일감을 적은 후 일감을 다한 아이들이 체크하는 일감 통과 표를 만든다. 이때 일감 통과 표의 위에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문장을 넣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결하는 것이 아름다운 행위임을 인식시킨다.
  『일감 통과 제』를 운영하다보면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다. 먼저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일을 무리 없이 처리하나 해마다 한 반에 5-6 명은 일감을 두고도 딴청을 피워 학습 속도가 느려 하교시간 이후에 남아서 처리하거나, 퇴근 시간인 5 시가 되어도 처리를 못하여 남아 있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하나 참으로 난감하다.
  처음엔 다 못한 일감은 가정에서 해오도록 하여 다음 날까지 연장을 해주기도 해보지만 아이들의 대부분은 다음 날까지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쉽다. 그러면 하루 이틀 일감은 쌓여가고 일감이 쌓이게 되면 아이들은 일감을 해야겠다는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포기하게 되고, 아이들의 습관을 고치기 전에 내가 먼저 지쳐서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약속은 지켜야하는 것' 인식시키기  

  일감 통과 제를 시작한 지 일 주일쯤 지나면 통과 표를 확인하고는 체크가 되어있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서 그 동안 다하지 못한 까닭을 묻는다. 반 전체 아이들과 함께 그 아이들의 이유가 타당한지를 점검하여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아이들의 일감엔 교사가 체크를 해주고 나머지 일감에 대해선 아이들과 언제까지 해낼 수 있는지 약속을 정한다. 그러면 흔히 아이들은 일감의 양에 관계없이 금방이라도 다할 것처럼 오늘 중으로 다하겠다고 약속을 해버리곤 하는데 이때 아이들에게 자신의 학습 속도를 생각한 후 신중하게 약속을 정하도록 해야한다.

  약속이 정해지면 난 아이들에게 교사와 한 번 약속한 것은 끝까지 지켜야한다고 얘기하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땐 일감을 다할 때까지 귀가시키지 않겠다고 또 다른 약속을 정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약속을 지키나 그 동안 학습태도가 아주 좋지 않게 형성된 서너 명의 아이들이 약속한 날 5 시가 되어도 일감을 해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먼저 아이들의 가정에 전화를 해서 부모님의 동의를 구하고 숙직 교사에게도 양해를 구한 후 계속 일감을 처리하도록 한다.
  처음엔 '다섯 시가 되면 선생님도 집에 가야하니까 보내 주겠지.' 하는 생각이거나 '몸으로 때우고(?) 말지 뭐.' 하는 생각을 갖고있던 아이들도 해가 지고 교실이 어두워지며 전등불을 켜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손길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가정에 전화를 하여 양해를 구하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의 습관을 고칠 수 있기를 바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몇 년 전 어느 학부모는 간식을 사 가지고 나오셔서 아이들의 일감이 끝나는 저녁 9시까지 함께 자리를 지켜주시기도 했다. 한 번 그렇게 자신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다음 날부터 일감을 처리하는 속도가 전과 다르게 빨라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능력이 부족하거나 일감의 양이 많아서 통과되지 못한 게 아니고 학습에의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자율성이 부족한 나쁜 습관 때문이다. 일감 통과 제를 운영하다보면 아이들의 학습력이 쉽게 파악되는 장점이 있다. 일감의 양에 따라서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학습량을 주기도 하고 또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양의 일감을 주기도 하는 등 융통성 있는 운영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하는 아이는 『자동 통과』

  모든 학습 활동들을 하나하나 검사하여 통과시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겐 서너 가지의 일일지라도 교사에겐 서너 가지 × 4-50 명의 일감이니 아침에 약속장(일기)을 점검하는 일부터 과제 학습, 준비물까지 체크를 하려면 하루에 200 번이 넘게 사인을 해주어야 하는 일이 빈번하여 교사가 먼저 지치기 쉽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율성 내지는 책임감을 기르기 위한다는 목적과 반하게 통과를 위한 기계적인 일감처리로 오히려 타율적인 아이로 만들지나 않나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일감 자동통과 제』이다.

  한 달쯤 지나 일감 통과 제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이 되면 교사의 점검이 없어도 스스로 일을 잘 처리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된다. 자동 통과 제는 그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감을 다한 후 교사의 통과사인이 없이도 스스로 체크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주 신중하게 도입하여야 한다. 먼저 교사가 아이들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하고 자동 통과 표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여 모든 아이들이 자동 통과 표에 도전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지도 해야한다.

  자동 통과를 할 때에는 우선 날마다 제때에 체크가 되는 몇 명의 아이들을 선정하여 반 전체에게 자동통과를 시킬 것인지 묻는다. 교사가 아이들을 보는 시각과 아이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때도 있기 때문에 난 꼭 아이들의 검증을 받는다. 아이들의 검증이 끝나면 명예로운 자동 통과 표를 주는데, 자동 통과 표를 받은 아이들은 반 전체 아이들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는데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잘하려 애쓰는 모습들이 역력하다.
  몇 년 전 6학년을 담임할 때 주영이는 아주 열심히 일감을 처리하는 아이라서 자동 통과 표를 주려고 하여 반 아이들의 검증가지 끝났는데도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 아직은 자율성이 부족하여 자동 통과는 이른 것 같으니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좀더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면 통과 표를 받겠다고 해서 나와 우리 반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일 이 있은 후부터 난 아이들의 검증이 끝나면 본인의 자동 통과표 수여 여부를 물어 스스로 자신과 약속을 다짐하도록 는 절차를 밟도록 하였다.
  
  1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대략 반에서 8-10 명 가량이 자동 통과 표를 받는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면 부쩍 늘어나기도 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학습 태도가 느슨해졌다며 받았던 자동 통과 표를 반납하였다가 스스로 해결하는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되어질 때 찾아가기도  한다.  
  일 년 동안 『일감 통과 제』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일감을 잘 해결하여 성취감을 맛보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몇몇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나 않을까 자못 염려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자동 통과 표를 받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다소 서툴기는 해도 통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또 자동 통과 표를 받기도 하고, 받았던 것을 반환하기도 해가며 아이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이나마 책임감이 형성되어 한 걸음 한 걸음 자주적인 생활에 다가가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