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나의 학급경영기

민주시민의식 기르는 임원선거

pjss 2008. 6. 29. 15:56

   민주시민의식 기르는 임원선거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10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학급임원 선거는 아동들이 올바른 선거과정을 통하여 장차 민주시민으로서의 기초토양을 다질 수 있는 습관과 의식을 체득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방법처럼, 그리고 기존의 교사들이 해오던 방식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임원선거를 하면서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어떤 학급운영 사례집을 접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그 한 표의 소중한 체험'이라는 소제목으로 쓰여진 학급임원선출 사례는 그동안 내가 소홀히 해온 학급임원선출 방식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담임교사의 임원에의 기대감, 그 기대감으로 인한 우려가 빚어낸 성적제한 등, 늘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할지 모르는 나에게 그 한편의 사례는 뚜렷한 지표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임원자격을

  그 해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학년초에 발표된 학급임원의 자격요건을 보니 전 학년도 종합성적 '15등' 안에 든 아동들에게만 입후보 자격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교사가 1등부터 15등까지 명단을 칠판에 적어놓고 그 중에서 기권을 할 사람은 기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 중에서 입후보하여 임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나는 성적 우수아에게만 임원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은 교육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동료교사에게 부당함을 얘기했지만 그냥 학교 방침대로 하면 아무 탈이 없으니 그렇게 하라는 충고만 들었다. 그때만 해도 교장 교감선생님께 항의를 할 용기가 없어 그냥 우리 반이라도 성적제한만은 없애고 학급의 모든 아이들에게 임원후보자격을 주기로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지역 선거관리 위원회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학교 임원 선거를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전교임원선거도 직접 선거를 하지 않는 때라서 며칠 간에 걸쳐 학급임원선거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고, 행여 학교측에서 성적제한을 없앤 사실을 알게 될까봐 가슴을 졸이기까지 했었다.

  아이들에게 임원 자격에 대해 설명하고 입후보 희망자나 추천할 사람이 있으면 추천하라고 했더니, 처음으로 성적제한이 없어지자 장난기가 발동하였는지 아니면 기존의 선거방침이나, 교사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우리 반에서 정신연령이 낮아 적응을 잘 못하고 있는 재선이를 추천하더니 서로 의논이라도 한 듯이 그 아이를 반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임원이 되었다고 좋아하며 인사말도 제대로 못하는 재선이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며 웃어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물론 성적에 관계없이 임원을 할 수 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그 애가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고, 어쩜 아이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과 내가 미리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 학기를 보내는 동안 내내 아이들도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하였겠지만 ......

  2 학기가 되어 다시 임원선거를 하게 되자 이번에는 1 학기처럼 장난을 하지는 않았지만 임원 선거일이 발표되면 1-2 시간을 내어 후보자를 추천하고 간단히 소견발표를 한 후 투표용지에 이름을 써내어 당선자가 정해지면 당선소감을 발표하는 행사로 행해졌다. 그렇게 선거를 하고 나자 임원선거를 통한 민주시민의 소양을 기르기는커녕 아이들도 연례 학교행사를 아무 생각 없이 꼭두각시처럼 치러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인가 바꿔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 선거 절차를 익히며

  다음 해 1 학기 임원선거일이 다가오자 나는 다시 한번 학급 운영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용기를 내어 이제는 학급임원 선거를 통해서 학급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원 선거일 5 일전에 올바른 대표자 상을 정리해주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직접선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 뒤 우리 학급의 임원선거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치러 보자고 제안을 했다. 참고자료를 보아가면서 나름대로 보완을 하여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방법이 서툴러 교사의 세심한 안내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어떻게 할지를 몰라 망설이던 아이들도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고 후보자 추천이 시작되자 서서히 열기를 뿜기 시작하며 태도가 자못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선거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4일전 >
1.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 각 모둠에서 선출된 아동으로 구성한다. 선거법, 선거절차를 제정하고 공고하며, 후보자 등록 ,선거인명부 작성, 불법선거 방지, 투표용지 작성, 투표소 설치, 개표위원 선정, 당선자 공고 등 선거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관리한다.
2. 선거법 제정 공고 : 선거법을 제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교사의  안내가 필요하며 민주주의 선거절차에 대한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
< 3일전 >
3. 후보자 등록 : 입후보 희망자는 반 아이들 중 10 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 등록한다. 이때 1 인 동일임원 복수 추천은 안됨. 이때 출마 의사가 있는 아동들은 반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추천을 받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아동은 추천을 희망하는 아동에게 학급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왜 출마하려고 하는지 등 제법 깐깐하게 질문을 한 뒤 추천서를 써주기도 해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추천을 못 받아서 출마를 포기하는 아동도 있었다.( 추천자는 학급원 수에 따라 가.감해야 함)
4. 후보자격 심사: 선관위는 추천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후보 등록 아동은 간단한 자격시험을 치른다.( Ex, 1학기 - 우리 반 친구들의 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나 ?  2학기 - 1학기에 있었던 우리 반의 어려웠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었나 ?)
5. 기호추첨 : 자격심사를 통과한 입후보자는 제비뽑기에 의해 기호를 정한다.
6. 후보자 공고 : 32 절지 용지에 후보자 이름과 기호를 적고 사진을 붙여 지정 게시판에 나란히 게시한다.
7. 선거운동원 등록 : 각 후보자는 운동원을 2 명 추천하여 등록한다. 이때 운동원은 남, 여 각 1 명으로 하면 좋다.
< 2일전 >
8. 후보자 홍보 : 후보자와 운동원은 협력하여 벽보와 연설문을 작성한다.
   벽보는 2 절지에 후보자 이름, 기호, 공약사항, 사진 등을 실어 지정 게시판에 붙인다.
< 하루 전 >
9. 선거유세 : 후보자가 공약사항을 중심으로 후보연설을 하고 운동원이 찬조연설을 한다.
10. 공개토론 : 후보자의 공약사항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선거법에 위배되는 일이 없도록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 않도록 주지한다.
11. 투표용지 만들기 : 단일 후보는 무투표 당선시키고 8 절 크기 한 장에 임원을 모두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
< 당일 >
12. 투표소 설치 : 투표함, 기표 대, 인주. 기표소, 선관위 석, 참관인 석, 선거인명부 대조 석을 설치한다.  
13. 투표 : 선거인명부에 사인을 한 후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여 투표함에 넣는다. 투표가 끝나면 투표함은 철저히 봉인하여 개표장소로 옮긴다.
14. 개표 : 선관위에서 정한 개표위원은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한다. 개표상황은 게시판에 게시하고 개표가 끝나면 참관인의 확인을 거친 후 개표결과를 모두 게시한다.
15. 당선자 공고 : 당선이 확정되면 당선자 명단을 공고한다.
16. 당선자 인사 : 당선을 축하하고 당선자의 인사말과 공약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낙선자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
17. 선거관리위원회 해체
18. '임원선거를 마치고' 글 쓰기 : 임원 선거를 마치고 절차와 내용을 적고 느낀 점이나 개선할 점을 중심으로 글을 써 보게 한다.
19. 중간평가 : 2 개월 후에 공약사항의 실천을 점검하는 중간평가를 실시한다.
      < 임원에게 >
      1) 우리 반 아이들의 뜻을 올바르게 수렴하여 담임에게 전했는가 ?
      2)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협력하며 학급 일에 솔선수범하는가 ?
      3) 학급회의를 잘 이끌어 나가는가 ?
      4) 공약사항을 이루어 가고 있는 가 ?  
      5) 임원의 역할 수행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6)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바라는 말은 ?  
      < 반 전체 아이들에게 >
      1) 임원이 역할 수행을 얼마만큼 하던가 ?
      2) 임원의 잘한 점은 ?
      3) 임원이 개선해야 할 점은 ?
      4) 임원의 역할 수행에 협조적이었나 ?
    중간평가를 실시할 때 자칫 잘못하면 임원을 비난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교사는 중간평가의 의의를 잘 설명한 후 임원을 격려하고, 임원 스스로 반성하여 보다 나은 임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자리가 되도록 안내를 잘 해주어야 한다.
    
선거에 적극 참여하는 민주시민으로

  아동들이 선거를 한 뒤에 써놓은 글을 읽어보면 우선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선거라서 흥미로웠으며 어른들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부쩍 커버린 것 같다는 표현도 있고,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일을 처리하는 선생님의 성격에 믿음을 표시하는 아동들이 참 많았다. 학부모들도 공정한 선거방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교사에게 신뢰감을 표시하기도 하셨고 연설문이나 홍보물을 제작하며 진땀을 빼는 자녀를 대견스러워 하기도 하셨다.
  대부분 1학년이나 2학년 때 한 번 임원이 되면 6학년이 될 때까지 자동(?)으로 임원이 되기 쉽다. 아이들의 생각 속에 한 번 임원이었던 아이들은 임원이라는 각인이 찍혀 있는 때문인지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해서 임원이 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 반은 대부분 새로운 아이들이 임원에 당선이 잘된다. 아이들은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임원 후보들을 철저히 검증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동안 각인되어있는 임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급에서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밟아 임원선거를 하면 반 아이들 전체가 선거법 제정에서부터 개표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어 민주적인 선거절차를 익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은 선거를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한 표 한 표에 담긴 소중한 의미를 체득하게 되어 적극적인 마음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민주시민의식을 키워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선거 시 유의점
1) 임원선거 5일전에 예화자료를 준비하여 임원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준다.
2) 선거법을 제정할 때는 반 아이들 전체가 참여하는 방법이 있고, 선거관리위원회가 모여서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
어떤 경우이건 공명선거를 이루기 위한 법률제정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담임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
정부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 제정한 선거법을 참고하여 학급실정에 맞게 제정해야 한다.
3) 선거인명부는 선관위가 반 아이들의 주소와 이름을 적은 명부를 작성한다. 여의치 않으면 학급명부를 사용해도 된다.
4) 출마 의사는 있지만 후보추천을 받지 못해서 출마를 포기해야만 하는 아동이 생기면 교사는 그 아동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대화를 통한 적절한 지도를 해야 한다.
5) 후보자격시험은 입후보 희망아동이 얼마만큼 학급 일에 관심이 있는지의 여부를 측정하는 시험으로 교사가 임의로 출제해도 되나, 선관위에서 의논하여 출제하면 좋다.
6) 선거운동원을 남녀 1명씩 추천하라고 하면 서로 이성친구간의 운동원을 구하지 못한다. 이때 교육적인 지도로 남녀 운동원을 추천하도록 하면 좋지만 그게 어려울 때는 강요하지 말고 1명만 추천해도 운동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7) 후보자 연설은 후보자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어떤 후보는 노래나 춤을 선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장기인 코메디 극을 하는 아동도 있다.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신을 홍보할 수 있도록 허용적인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연설문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다른 후보의 연설을 흉내내어 연설을 하는 아동도 있는데 모든 일에 준비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는 의미에서 미리 연설문을 점검하여 지도해주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8) 찬조연설자는 최대한 후보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해야 하는데 너무 추상적이거나 현실감이 없는 얘기로 흐르지 않도록  미리 사전에 지도를 하여 구체적인 장점과 적절성을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9) 투표용지는 될 수 있으면 한 장에 모두 기표할 수 있게 만들어 투표하고 개표할 때 임원별로 나누어 정리하면 편리하다.
10) 투표소를 설치할 때는 특별 실을 이용하면 좋으나 학교 형편상 그게 어려우면 교실 한쪽에 설치하면 된다. 투표함은 종이상자를 이용해서 만들어도 좋고 우산꽂이 통 같은 학급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개조하여 사용해도 된다.  
11) 후보자, 선거 운동원, 선거관리위원, 개표위원 등의 역할이 치우치지 않게 각각 이루어져야 하므로 거의 반의 모든 아이들에게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이때 소외감을 느끼는 아동이 없도록 교사의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