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나는 한때 내가 자라온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도 좋다고...
그러나
이야깃거리를 챙기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일대기를 항해하던 난
조용히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건 결코 이야깃거리가 부족해서도
나의 부족한 문장 솜씨 때문도 아니었다.
하나하나 나를 더듬어 나가면서
난 나 자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음흉함, 비겁함, 교만함...
이루 말할 수 없는
내가 평소에 그리도 싫어하고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그 무수한 몹쓸 단어들이
나를 지배해온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글로 쓸 수 있단 말인가?
순간 나는 몸서리를 쳤다.
두껍게 허염심으로 포장되어 들여다보기도 싫었던
나의 비굴한 속내를 ...
그래서 다시는 자서전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시 굳게 더 굳게 포장지를 발라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박완서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으면서
작가의 솔직하고 담백한 고백에
내심 부끄러워졌다.
작가가 자신의 비굴했던 기억까지도 끄집어내어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 기억들로부터 자유스러워졌기 때문이리라.
자유스러워졌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굴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난 아직도 감추고 싶은 것이 많고
아직도 비겁함도 교만함도 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후에 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작가처럼 칠순이 지나면?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내 안으로의 물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200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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