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토마토가 열렸다.

pjss 2009. 5. 26. 12:17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토마토가 열렸다.


우리 학교에는 작은 텃밭이 세 군데나 있다.

숙직실 뒤쪽에는 네 평정도 되는 작은 텃밭의 한쪽엔

작년에 가꾸어 먹었던

부추와 상추, 치커리 등이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니 저절로 자라나

심심찮게 우리의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반쪽은 지난 가을 우리 학교을 예쁘게 빛내준

국화 뿌리를 옮겨 심어

가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택 옆에 두 평 남짓한 세모난 모양의 텃밭엔

4월에 어성초와 강낭콩을 심어서

지금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곳 가장 넓은 담장 밖의 텃밭

작년에 남편과 함께 많은 돈을 들여서 씨앗이며 모종을 심었었는데

거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풀이 채소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는 바람에

투자한 금액의 10분의 1도 거두지 못하고 포기해 버렸던 전적이 있는지라

올해는 많이 망설여야만 했다.


3월 4월을 보내며

풀만 무성히 자라나고 있는 텃밭을 바라보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무겁고 편하지가 않아

5월 4일 효도방학을 맞아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방학을 반납하고

이 주사님, 남편과 함께 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상추는 씨앗을 뿌리고,

고추, 토마토, 가지, 수박, 오이, 파프리카의 모종을 심어

지지대를 세워주니 마치 덥수룩한 머리칼을

단정하게 이발한 사내아이의 머리처럼 보기 좋게 변했다.


다음 날 팻말을 세우고 이름표를 달아주니

그동안 쌓였던 체증이 단숨에 내려가는 듯 했다.


아이들과 함께 김도 매주고

지지대에 묶어도 주고

지난 호주의주의보가 내릴 때는 행여 쓰러지면 어쩌나 애도 태우며

하루빨리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기다리기를 여러 날,

키는 비록 작아도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주더니

오늘 아침 드디어 토마토가 열린 것이다.


며칠 전에 고추가 열린 것을 보기는 했으나

고추는 그래도 흔한 것이기 때문에 신가함이 덜했는데

토마토 세 개가 나란히 맺혀 그 고운 얼굴을 내미는 것은

신비로움과 환희 그 자체였다.


“애들아, 토마토가 열렸다.”

교실에서 책 나라 아침 산책을 하고 있던 아이들도

한달음에 텃밭으로 달려가

신기한 듯 토마토를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씨앗을 너무 깊이 심은 탓인지

3주가 지나서야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상추 밭에 상추보다 더 빨리 자란 키 작은 풀들을 뽑아주고

토마토가 어서 자라 빨갛게 익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교실로 들어오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