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싸~하니 아릿한 그 맛~~~

pjss 2009. 5. 16. 11:24

2009년 5월 16일 토요일

 

싸~하니 아릿한 그 맛~~~

 

어제 저녁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하여
아침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단비를 보며
얼마 전에 심은 텃밭의 모종들이 쑥쑥 자라날 것을 생각하니
출근길을 조금 방해하는 불편함 정도야 대수롭지 않다는 마음으로
교실에 도착하였다.
 
사이버가정학습을 마치고
책 나라 아침 산책을 하고 있던 세은이가
출근하는 나를 반기며 말을 건넸다.

 

“우리 할머니는 동강 장에 가셨어요.”
“그래, 비가 와서 불편하시겠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사오라는 것을 잘 사오실까?”
“무얼 사오라고 하셨는데?”
“농약이요.”
“무슨 농약?”
“무슨 약이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잘 알아듣지 못하니까 고추가 끝에서부터 말라 들어가는 약이라고 했는데.......”
“우리 세은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구나.”
“네. 제대로 사오실지 모르겠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침부터 할머니를 걱정하고 있는
우리 세은이.......

 

며칠 전엔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선생님께 무언가를 주고 싶은 데 줄 것이 없어서 가져왔다며
꼬깃꼬깃 싸진 신문 뭉치를 내밀기에
받아서 펼쳐보니
제사상에 올렸던 사과와 참외가 한 개씩 나란히 들어 있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수퍼마켓이나 구멍가게 하나 없는 곳이라서
무엇보다도 과일이 흔하지 않는 우도에서
오랜만에 만난 귀한 과일을 얼마나 먹고 싶었을 텐데
그 먹고 싶은 마음을 하룻밤 동안을 견뎌내고
포장지가 없어서 그랬다며 신문지에 싸서 가져와
수줍음과 함께 내밀며 선물해준 세은이

 

이 세상에서 그처럼 귀하고 달콤한 사과와 참외 맛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한 입 베어 물며 느껴지던 싸~하니 아릿한 그 맛~~~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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