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가족 이야기

남편의 사랑

pjss 2008. 10. 21. 00:22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지난주에 조그마한 내 방에 컴퓨터를 들여 놓았다.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서 관사에 인터넷 랜 시설을  해 주신 것이다.


밤늦은 시각까지 교실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없어져서 좋다.

그런데 작은 공간에 17인치 모니터는 TV화면보다 커 보인다.

어쩐지 너무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를 켜면 우선 소음이 방안에 꽉 찬 느낌이다.

이 소음을 감당하기엔 내 방이 너무 작은 것이다.


소음을 잠재우려고 일부러 음악의 볼륨을 높인다.

작은 섬에 마치 나와 음악만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Debby Boone의 ‘You Light Up My Life’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데

어쩐지 앞으로는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많이 빼앗길 것 같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를 때면 언제든지 모니터를 켜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다.


오늘은 남편이 다녀갔다.

우도 주민들을 대접하기 위해 술과 안주, 떡, 과일 등을 장만해 가지고.......


실은 지난 토요일에 우리 학교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학교 앞 언덕에서 불이 난 것이다.

오후 12시 20분경 연기가 교실 근처로 날아오기에 처음엔

쓰레기 소각장에서 나는 연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사로 내려가 확인해 보니 학교 앞 길 아래 언덕에서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주사님과 이 선생님 그리고 나, 셋이서 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건조한 날씨가 계속 되고 예초기로 잘라 놓은 마른 풀이 널려 있는 공간이라서

순식간에 불길이 사방으로 번지는 것이었다.

호스로 물을 연결하고, 대야에 물을 길어다 부어보았지만

번져가는 불길과 이리저리 길 위까지 튀어가는 불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불길에 얼굴은 화끈거리고

매운 연기로 눈물까지 나오며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바다는 닫혀 있어 119에 연락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마을 이장님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

트럭에, 경운기에 싣고 오셨다.

다행히 그 분들이 오실 때쯤에는 이 주사님과 이 선생님의 기치와 수고로

불길이 거의 잡혀가고 있었다.


불은 약 200여 평 정도 되는 언덕을 검게 태우고 나서야 잡혔다.

다행히도 큰 나무와 짚 벼늘(낟가리)을 태우지 않았다.

만약 그것을 태웠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운이 좋았다며,

이만 하기 다행이라 하시며 돌아가셨다.

누군가의 부주의로 일어난 작은 불씨가 학교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우도 섬 전체를 태울 뻔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남편이 우도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표시로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온 것이다.

(참, 남편 노릇도 힘들다. 원)


아홉시 쯤 되어 남편을 바다건너로 배웅 나갔다.

달빛이 없는 하늘엔 참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별이 바다를 품은 것이지

바다가 별을 품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어두운 저편 바다 끝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의 남편을 보내고

캄캄한 바닷길을 되돌아왔다.


저 별들은 우도에서 일어난 작고 큰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 수고를 마다않는 내 남편의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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