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6일 월요일
“그래도 엄마이긴 한가봐”
지난번에 집에 내려온 아들 국인이가
속눈썹이 자꾸 빠져서 불편하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을 눈썹이 빠지곤 해서
그때마다 불편한 눈을 헤집고(?) 찾아서 빼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그러더니 며칠 전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해야겠다고 했다.
쌍꺼풀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눈의 형태는 그대로 두고 안쪽에서 시술을 하는 것인데
수술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린단다.
나도 어렸을 때 눈썹이 자꾸 동공을 쑤시는 바람에
눈이 아파 자꾸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눈물이 자꾸 흐르며 찡그린 인상이 되어
고등학교 2학년 때 견디다 못해 쌍꺼풀 수술을 했던지라
불편함을 줄일 수 있으면 다행이다 싶어서
수술을 하라고 하며 돈을 부쳐 주었다.
오후 3시에 수술 시각이 잡혔다며
오늘 오후 2시 30분경에 병원에 가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잘하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전화를 끊고는 잊고 있었는데
퇴근 무렵 갑자기 아들의 수술 생각이 났다.
‘1시간 정도 걸리면 벌써 끝났다는 전화가 왔어야 하는데?’
문자를 보내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행여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혹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눈을 다친 건 아닐까?’
‘병원 이름이라도 알아두는 건데.......’
아무리 쉬운 수술이라 해도 1시간이 걸린다는데
‘친구라도 함께 가라고 할 걸.’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술실로 혼자 들여보낸 것 같아
매정하기 짝이 없는 엄마였던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잘못되어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연락도 못 취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몹쓸 생각들로 소설 한 권은 거뜬히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은 떠오르기조차 않고
운전을 하면서 늘 습관처럼 켜두었던 라디오는
오늘따라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연락을 취할만한 아들의 친구를 떠올리려 해도
대학 친구들은 이름이나 전화번호 하나를 모르고 있었다.
속수무책인 시간이 자꾸 흘렀다.
어찌할 바를 몰라
남편에게 전화하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평소에 냉정하고 무심하던 나를 빗대어
“그래도 엄마이긴 한가봐.”
하며 놀리기까지 하였다.
“왜 이제야 전화하니?”
6시가 조금 넘어서 걸려온 전화기 속의 목소리에 반가우면서도
대뜸 아들을 나무라기부터 하였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엄마는~?”
아들은 수술 마치고 회복실에서 회복하며 냉찜질하고 나니 이제 끝났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걱정을 한 걸 생각하니 웃음이 다 나왔다.
친구랑 함께 병원에 갔다며
날마다 병원 다니며 냉찜질해서 빨리 회복해야겠다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씩씩한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한 기우로 마음 졸였던 그때가 어느새 먼 옛날처럼 느껴지며
“그래도 엄마이긴 한가봐”
나를 놀리던 남편의 핀잔이 슬그머니 떠오르며 나를 미소 짓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