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토방에 있는 화분을 마당으로 옮겨 찍음>
2008년 7월 4일 금요일
나만 실컷 배부른 친정나들이
쌀이 떨어졌다.
“그럼 사먹으면 되지 뭐 그런 게 다?”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니 나와 내 남편은
쌀을 사 먹는다는 게.......
1985년에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주욱~
시골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으신 쌀이며, 푸성귀며,
양념이며, 김치며, 심지어는 계란까지도 늘 가져다 먹기만 했었다.
그런데 지난 초가을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남으신 팔심칠세의 아버님은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논이며 밭을 이웃에게 내 주셨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가져다 먹는데 길들여진 탓인지
푸성귀며 양념들을 사먹으려면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한 나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이
그동안 친정 엄마는 때가 되기도 전에
반찬이며, 양념들을 챙겨주셨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쌀통이 바닥이 난 것이다.
마트나 쌀가게에 가서 쌀을 구해오면 간단한 것을
“슈퍼나 마트에 가서 사면 돼.”
말로만 그렇게 하고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쌀이 똑 떨어진 것이다.
나와 남편은 둘 다 그것을 알면서도 하루를 보내버렸고
나만 달랑 우도로 들어와 버렸다.
우도로 들어오고 나서 생각하니 남편에게 미안하여
전화를 하여 정황을 살펴보니
지난 한 주 동안 남편은 거의 외식을 하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쌀이 떨어졌어요.”
나의 이 한마디에 엄마는 마치 아사 직전의 딸을 만난 듯 깜짝 놀라셨다.
“내일 아침 당장에 쌀을 찧어 놓을 테니 가져가거라.”
하시며 쌀이 없어서 곧 죽을까봐 걱정이 되는 듯
가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신다.
‘아무래도 내가 믿는 데가 있어서.......’
다음 날
물때가 맞지 않아 가지 않았더니
어제는 동생 혜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성가야, 쌀이 떨어졌다면서?”
“응, 어찌 알았냐?”
“엄마가 전화해서는 점숙이는 쌀 팔아 먹을지도 모른가 보더라 하데.”
“푸훗.......”
“시간 나면 들러서 옥수수랑 가져가소.”
“그래, 알았어. 니 형부가 옥수수 킬러 아니냐.”
“그래?”
오늘 학교신문 원고편집을 완성하여 인쇄소에 전송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벌교에 사는 동생에게 갔다.
동생은 마치 작업실에서 그릇을 빚고 있었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사진기에 담고
인삼 갈아 만든 영양 만점 냉콩국수를
배불리 한 그릇 먹고
일곱 시 물이 닫히기 전에 우도에 들어가면서 들르려고
친정에 전화를 하니 아버지께서 받으셨다.
“아버지, 저 점숙이예요.”
“응, 어디나?”
“여기, 벌교예요.”
“응, 전주라고?”
“아니요, 벌교라고요.”
“뭐라고?”
“아, 제가 집에 갈게요. 지금”
올해 팔십삼 세인 아버지는
전화기를 통한 나의 말귀를 그리도 알아듣기가 힘드신가 보다.
“허참, 전주가 뭐야?”
속상한 마음에 투덜투덜 휴대폰을 닫았다.
동생이 싸준 옥수수랑,
계란,
보리쌀,
유기농 쌀까지 가득 싣고 친정에 가니
엄마는 어느새 검은 비닐봉지에 싸매진 보따리들을
줄줄이 마루에 늘어놓고 계셨다.
아마도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는 그 짧은 시간에
금세 저리도 많은 것을 준비하셨나 보다.
쌀 한 자루,
익은 오이,
매실 장아찌,
도라지 무침,
삶은 새우,
간 갈치 도막,
간장 게장까지 한서방 구워주라며 싸 주셨다.
갈치도 있고, 게장도 있다고 하자
믿기지 않다는 듯이 한참을 쳐다보신다.
“아, 장말로 있어요. 저 번에 한서방 친구가 줬어요.”
게장 그릇만 내려놓고 갈치도막은 기어코 봉지에 싸 버린다.
그러면서도 입이 짧은 내가 먹지 않을까봐
“오이는 익었으니 새우 넣고 볶아 먹고,
매실 장아찌는 고추장 넣어서....... 아참, 고추장은 있냐?”
이것저것 챙기시느라 하염없이 분주하시다.
혜숙이와 저녁을 먹었다고 하는데도
밥도 안 먹고 가냐며 서운해 하시며 두 분이 따라 나오시며
“이제 학교에 풀 맬 곳 없냐?” 하신다.
내가 학교 운동장과 화단의 잡초 때문에
골치를 썩인 것을 알고는 하시는 말이다.
“왜요? 아직 맬 곳이 많아요. 같이 갑시다.”
“오늘은 구역 예배 날이라 안 되고.......”
“그럼 엄마, 내가 언제 모시러 올 테니까 학교의 풀 몽땅 매 주세요?”
“응, 그래, 알았다. 데려가기만 해라.”
두 눈에 애잔한 사랑을 가득 담고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개 주욱 내밀어 바라보고 계시는 부모님
나는 오늘도 나만 실컷 배부른 친정 나들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