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시의 향기

이 가을에 -양현근-

pjss 2008. 9. 21. 20:05

 

 

이 가을에


                                    양현근


이 가을에는

젖은 음표들을 말려야지

지난여름

욕망의 이깔나무 숲을 건너오는 동안

무심코 자라난 귀를 맑게 씻어야지


노역의 상처들을 말리는 동안

아다지오의 여백 속은 참 넉넉하리라

때때로 쉼표를 찍어가며

촉촉한 노래들을 오랫동안 흥얼대리라

지상의 세간들이 따로 노래가 될 수 있다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 것인가


물빛만 출렁이는

내 발자국 길어 올리는 이 없어도

이 가을에는

당당하게 웃어야지

깊은 뿌리내림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야지


곱지는 않아도 넉넉한 음색으로

내게 주어진 것들을

흔들림 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열꽃의 아열대

아, 그 아득함을 건널 수 있다면

이 가을에.


 

'문화 산책 > 시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 -오세영-  (0) 2008.09.30
담쟁이 -도종환-  (0) 2008.09.21
친구에게 -이해인-  (0) 2008.09.20
망초꽃 -노유섭-  (0) 2008.09.09
가을에는 -박제영-  (0) 2008.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