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시의 향기

담쟁이 -도종환-

pjss 2008. 9. 21. 20:08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이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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