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3일 일요일
연체이자의 일부라도.......
“박 선생님, 갑자기 하루 휴가가 생겼는데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선생님의 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혹시 다른 계획이 있으신 건 아닌지요?”
“아닙니다.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저희 가족이 함께 가는데 부군도 함께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 네."
“그럼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어제 저녁무렵
13년 전(1995년) 광주교육대학교 계절제대학을 다닐 때
학급경영 수업을 수강하며
내가 학급경영사례발표를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나에게 많은 가르침의 기회를 주셨던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님!
그 후로도 광주교육대학교, 광주교대부설연수원,
광주시교육연수원등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학급경영연구소, 새교육, 광주일보, 새교실 등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물론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책을 발간하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기회로 나를 발전 시켜 주신 분이지만
난 여태 한 번도 고마움의 표시조차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기에
지난 7월 29일 제5대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선거에서 당선되신 후
갑자기 맞게 되었다는 휴가를
뜻 깊게 보내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우도의 바닷길은 오후 두시 경에 열리니
오전은 뭍에서 보내고 점심을 먹은 후에 우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지가 고민되었다.
‘소록도엘 갈까?’
‘내발 해수욕장엘 갈까?’
‘점심은 어디에서 무얼 먹을까?’
이런 저런 계획에 밤잠을 설치고
날이 밝아 아침 일찍 국과 반찬을 챙겨
시아버님께 가져다 드리려고 외서로 향하고 있는데
친구 혜영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이 생일 아니냐고?’
‘아니, 어떻게 생일을 다 기억하지?’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하니
지난 번 블로그에 올려진 글에서 본 기억이 난 것이란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다니.......’
혜영이는 광주에 내려 왔는데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우리가 일 년에 한 번을 만난다 해고
앞으로 스무 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아, 얼마나 보고 싶던 친구인가!’
금방이라도 광주로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을 친구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아
내 마음의 파문을 잠재우기가 힘들었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좀더, 자주 생각하고,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구나.’
남편은 고향 선후배 모임인 체육행사를 빠지며
평소 남들에게 친절하지도 못하고
어른들을 대접할 줄도 모르는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도와주겠다며 동행을 하여
우리 부부는 그 분을 맞으러 고흥으로 향했다.
고흥 우주휴게소에서 10시 경에 만난 그 분은
부모님과 가족, 동생 가족 그리고 교수님 한 분이 동행이셨다.
반바지에 색이 바란 티셔츠 그리고 흰 고무신까지
그 분의 말대로 대학 총장이 아니라
수위아저씨라 해야 어울릴 것 같은 수수한 차림의 그 분과 사모님은
냉커피에 점심 먹거리까지 준비해 오시는 세심함을 지니셨다.
소록도는 이미 다녀 가셨다기에
내발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하였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면서도
권위의식을 내세우지 않고
소탈하고 소박하신 그 분은
부모님을 모시는 것 또한 극진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침 출근하기 전에 부모님의 농사 일손을 도와주고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지만
전국 어디에고 안 모시고 간 곳이 없다며
강의를 가는 곳마다 함께 모시고 가서 구경을 시켜 준다며
아들을 자랑하시는 그 분의 부모님을 뵈며
부모님을 모시는 데에 지극히 무관심하고
전화 한 통화에도 인색하기만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준비해 오신 옥수수, 기정떡, 찰밥 그리고
현지에서 조달한 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오는 길에 고흥종합문화회관의 천경자전시실을 관람한 후
열려있는 바닷길을 타고 우도로 향했다.
간단히 학교에서 차를 마신 후
바닷가에 가서 고동을 잡았다.
고동, 게, 소라, 성게, 바지락, 불가사리, ......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고동을 잡으며
바다에 와서 이렇게 많이 잡아보기는 처음이라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나 또한 기뻤다.
벌교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하루의 휴가를 마무리 짓고 우리는 헤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13년 동안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교수님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늘 바쁘게 일하시는 교수님의 시간을 뺏을 까봐
교수실에 방문하여서도 30분을 못 넘기고 나와야 했기에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교수님의 일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는 교수님과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말 수가 적은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믿음이 가는 사모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동안 늘 빚진 기분으로 살았는데
남편의 말대로 연체이자의 일부라도 갚은 것 같아서
오히려 이런 기회를 주신 교수님이 고마웠다.
'친구이야기 > 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의 전화 (0) | 2008.09.17 |
---|---|
589 모임 (0) | 2008.08.23 |
여유 ! (0) | 2008.06.29 |
나도 누군가에게 ...... (0) | 2008.06.29 |
횡재? <천경자 전시실> (0) | 2008.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