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만들 미래는
-에너지절약 시범학교를 마치고-
1997년 10월 18일
순천연향초등학교 교사 박점숙
초등학교 6학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온 조카들에게 무엇인가 해 주시고 싶었던 외숙모께서는 넉넉하지도 못한 살림이지만 시장에서 반바지와 티셔츠를 사오셨다. 늘 언니의 헌옷만 물려 입었던 나는 바지가 너무 꽉 끼인 것 같으니 바꿔다 주겠다는 외숙모의 말씀에 한 번 바지를 가져가면 다시는 내 것이 될 것 같지 않아 절대로 벗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바지 가랑이가 터져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만 웃지 못 할 추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게 다 귀했다. 그래서 아껴 쓰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헌옷은 물려 입었고, 몽당연필은 붓 대롱이나 볼펜대에 끼워 썼으며, 공책은 닳아져서 찢어질 때까지 다시 쓰곤 했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로 불과 2-30년 사이에 귀한 것이 없을 정도로 물질이 풍부한 세상이 되어 자기 물건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여야 하는 시범학교 운영이 시작될 때만 해도 많은 걱정이 앞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절약을 생활화 할 수 있을까?’
‘지속적인 실천력이 약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부터 실천해 보게 할까?’
‘그래, 가장 쉬운 것, 너무나 쉽게 버려지는 이면지를 재활용하도록 하자.’
아침 생활계획 시간에 이면지를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광고지나 컴퓨터 용지, 복사용지 등 이면을 쓸 수 있는 종이를 모아 4등분 한 뒤 메모지로 사용하게 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지 모두가 열심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재활용지통은 쓰레기통으로 변하고 말았다.
왜 아껴 써야 하는지,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학교방송을 통해서 또는 수업 시간 그리고 책을 통해서 배우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또 시작하기를 수십 번, 이제는 약속장이나 교과서 등에 붙여 쓰는 작은 종이는 물론이고 A4용지에 해야 하는 내용도 재활용용지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아이들, 우유를 먹고 나서 우유팩을 펼쳐서 말리는 손길, 몽당연필을 가져와서 모으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흐르는 물 한 방울, 필요 없이 켜져 있는 전등 하나에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 감을 보며,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절약의 생활화를 이루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만들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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