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즐거운 노래로 가득하기를

pjss 2008. 6. 29. 12:16
2008년 6월 27일 금요일

즐거운 노래로 가득하기를

“몇 살?”
“아홉 살”
“넌?”
“여덟 살”
“집이 여기야?”
“난, 여기고 쟤는 다른 데고”
“다른 데 어디?”
“저어기 동네”
“같은 섬이잖아?”
“네”
“언니 있어?”
“없어요.”
“서울에 있지?”
“아니, 없어”
“그래? "
"서울에서도 살고 여기서도 살잖아.”
“아니야, 서울에서 살았다는 거고......”
“........”
“응, 그래.”

지난 6월 초에 주문한 에어컨이
한 달 정도 걸려야 설치 가능하다더니
오늘 아침 일찍 설치하러 온 기사아저씨가
복도의 ‘나의 명예약속’ 점검표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던
우리 반 세은이와 진상이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세은이와 진상이는
조손 가정, 소년 가장이지만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런 내색 없이 살아내고 있는 그네들이
기특할 때가 많다.

그제 어떤 모임에서 만난 후배교사는
4학년을 데리고 공개수업을 하는데
구름을 타고 가고 싶은 곳을 발표하라고 하니까
어떤 아이(조손가정)가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해서 그 순간
교사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를 몰라서 말이 막히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보여서
교사도, 아이들도, 참관하던 동료교사들도
한순간의 정적 속에서 모두 눈물을 훔쳤는데
수업이 끝나고 정작 그 아이가 선생님께 와서는
“선생님, 아까 왜 울었어요? 선생님이 우니까 저도 눈물이 났어요.”
하더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아직 인식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상황을 일찌감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일까?

“진상이가 누구야?”
“전데요.”
“너 꿈이 비보이냐?”
“네!”
“얘는 가수예요?”
“그래, 둘이 함께 활동하면 되겠네.”
“에~옛? 푸 하하하......”

기사아저씨는 이 조그만 섬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하는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계속 말을 걸었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집집마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어서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이 말을 걸어주니 신이 난 것인지
지난 5월에 배운 '아이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을 활짝 열고 있는 세은이와 진상이를 바라보며
앞으로 그네들이 열어갈 수없이 많은 날들 또한  
즐거운 노래로 가득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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