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야기/소통

500원짜리 호박

pjss 2008. 6. 29. 03:47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내가 출근하는 길목엔

아침마다 소박한 장이 선다.

삼일동사무소와 우체국, 농협이 위치한

도로가에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아침마다 푸성귀를 앞에 놓고

주인을 기다리며 앉아 계신다.

가끔씩은 차를 멈추고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해도

출근 시간이라 바쁘기도 하고

또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여태 한 번도 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동료 교사의 주선으로 은빛 나는 맛난 갈치를 구해서

가운데 토막은 구워먹고

머리와 꼬리부분은 조림을 해 먹으려고 보관해 두었다가

어제 요리를 하려고 슈퍼마켓에 가서 둥근 호박을 사려고 했는데

호박이 없어서 사지를 못했다.


오늘 아침엔 다른 때보다

40 분이나 일찍 등교한 딸 덕분에

나도 다른 때보다 10 분 일찍 집을 나섰다.

장이 열리는 길목을 지나는데

마침 둥근 호박이 눈에 띄었다.

순간 살까말까 망설이다

갈치호박조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차를 멈추고 다가가니

여섯 분 할머니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이 호박 사려고요.”

“아..”

“이거 꼭지가 없는데 싱싱한 거죠?”

“암, 딸 때 꼭지가 뚝 떨어져부러서 그래.”

“네, 얼마예요?”

“500원만 줘.”

“네? 왜 그것밖에...”

"그라믄 그걸 을매나 더 받을 겨?“

“네, 그냥 1,000원 받으세요.”

“안돼야... 자 500원.”


1,000 원쯤은 할 줄 알았는데 500원밖에 안한다는 말에

그냥 1,000원을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는 나를 불러 기어코 500원을 내어 주셨다.

“슈퍼에선 1,000원씩 하는데..”

“....”


다시 시동을 걸어 학교로 향하면서

순간적으로 보여진 어쭙잖은 나의 행동이

‘행여 할머니에게 값싼 동정으로 비춰졌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그래도 오늘 점심엔 맛있는 갈치조림으로

포식(?)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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