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일 수요일
16년 전 고흥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남편은 고흥읍에서 광양제철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우린 순천으로의 입성을 꿈꾸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순천으로 전근을 가게 될 거라는 확신이 섰을 때
그동안 불입하던 적금을 모두 찾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순천에 아파트를 계약하러 갔다.
그때만 해도 순천에 아파트라곤 겨우 두 군데 정도였던 것 같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생목동 현대아파트를 분양 된 지 한 달 만에
프리미엄 300만원을 더 얹어주고 4600만원에 샀다.
그리고는 내 집이 마련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순천에 가기만 하면 아직 공사 중인 아파트엘
십 수번을 올라 다녔다.
순천의 초입에 들어서면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아파트를 보며 쿵쿵거리는 가슴을 꽉 보듬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드디어 다음해 3월 내가 순천으로 발령이 나고
한 달 후에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주를 하여
어언 16년을 살았다.
그동안 같은 통로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바뀌고
드디어 어제는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16년을 가장 가까이 의지하던
위층 사람들이 이사를 갔다.
“딩동”
“누구세요?”
“재연이 엄마예요.”
“아.”
“저 내일 이사 가요.”
“으응, 그래 좋겠다.”
“아니? 서운하다 그래야지 좋겠다고 그러면 어째?”
“서운한 거야 말로 표현할 수도 없지......”
“내일 10시에 가는데 혹시 못 볼 것 같아...”
정말 서운하다.
하지만 큰 평수(?)로 이사 간다니
서운함은 감추고 진심으로 축하해 줘야지.
오후에 벌교에 사는 동생 혜숙의 공방에 가서
예쁜 과일 접시를 사왔다.
“위아래 층에 살아도 얼굴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정말 보기 어렵겠네.”
“그러게요.”
“그래도 같은 교직에 있으니 언젠가는...”
“허긴 그러네요.”
“이거 내 동생이 손수 만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작품이야.”
“어머, 그런 귀한 것을..”
“마음이야. 더욱...”
“꺼내 쓸 때마다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러라고 주는 거야...”
“네..”
저녁에 위층으로 올라가
받지 않으려다 억지로 내민 손에 접시를 쥐어주니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나도 더 이상 말을 건넬 수 없어 바삐 문을 닫고 나와서는
내려오는 계단에 한참을 서있어야만 했다.
우리 함께 운동장을 돌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우리 함께 쇼핑하며 즐거웠던 일들을,
우리 함께 드라이브하며
부부싸움의 하소연을 주고받았던 믿음을
이제는 차곡차곡 예쁘게 접어
내 마음의 보석 상자에 담아 두어야겠지.
가끔
그리울 때면 한 번씩 꺼내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