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나의 이야기

나, 진짜 공주 맞나?

pjss 2008. 6. 29. 03:15

2006년 3월 15일

 

눈발이 날린다.

처음엔 벚꽃 이파리처럼 나풀거리더니

이제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있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눈이 내리네.’가 흘러나오고

갑작스런 눈으로 차들은 모두 비상들을 깜박이며 서행 중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단다.

봄을 시새워하며.


봄?

시샘을 당할 만하다.

예로부터 시샘을 당한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나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만물의 잠을 깨우고

마른 가지에서 새싹을 피워내는

그 봄을 동장군이 시새워할 만도 하지

하지만 봄은 또 얼마나 멋진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봄은 상처를 받으며 더 멋있게, 더 화려하게 피어난다.


나도 봄을 닮았나?

어랄 때부터 시샘을 쭈욱 받아 왔으니(우엑, 공주병!!)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꽃샘추위 고놈 참, 봄을 더욱 빛나게 하는 보석이구만!’

어느 새 꽃샘추위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

내친김에 오늘 저녁은 공주 밥상을 차려보리라.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며칠 전에 시댁에서 제사 지내고 가져온 음식들이 가득하다.


지난봄에 허리 휘게 산허리를 돌며 꺾어 모은 고사리,

여름이 시작 될 무렵 움트고 올라오는 죽순 중에서

가장 실한 것만 골라 꺾은 왕대죽순,

여름 내내 지붕위에 올라가 따내어 썰어 말린 호박말랭이,

알뿌리를 먹기만 아까워 그 넓은 잎을 통째로 말려 엮은 토란잎,

어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이 계절까지 갈무리하셔서

닭장과 들깨 국물로 맛나게 무친 나물들이며,


납작납작 썬 무와 빼득빼득 말린 명태로 조린 무선,

생선전과 소고기, 파, 고추, 게맛살을 엮어 지진 산적,

시장에서 제일 큰놈만 골라 산서 찐 조기, 민어, 

닭고기와 두부, 송이버섯, 굴, 홍합으로 만든 탕국 등

며칠 동안 우리 집 식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시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반찬들!!!]


오늘쯤 되면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 해도 질릴 때가 되었을 것 같다.

우리 남편 워낙 반찬이 젬병인 아내와 사느라 늘

“우리 집 식탁엔 부족한 2%가 있다.”

한다.

아니, 실은 나도 벌써 개운하고 얼큰한 뭔가가 먹고 싶다.

‘음, 뭘 하지?’

‘아, 김치찌개!’

겨우 생각해 낸 게 김치찌개다.

남편이 먹고 싶어 하는 봄 내음 가득한 쑥국도 생각했으나

오늘은 눈이 내리고 있지 않은가?


돼지고기를 냉동실에서 꺼내어 참기름과 설탕을 넣어 볶다가

신 김치를 넣고 한 번 더....

다음엔 양파와 파, 물을 조금 넣고 한소끔 끓이니

‘아, 맛이 천하의 일품이다.’(늘 나 혼자의 생각임)

“따르릉...”

“네, 여보세요?”

“응, 난데 저녁 먹고 들어갈게. 횟집에서...”

“네. 맛있게 .....”

남편의 전화다. 저녁 먹고 온다는...

‘아휴, 늘 이렇다니까?’

그렇다고 예서 그만 둘 순 없지.

있는 반찬 예쁘게 접시에 담고,

며칠 전 남편이 사온 작은 꽃이 담긴 화분도 식탁에 놓고

정말 공주처럼 우아하게 앉아 저녁을 먹는다.

두 그릇 아닌 한 그릇 만.

‘아, 배부르다.’


이제 배부르니 그렇게 맛있던 김치찌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니 속이 다 역겹다.(아, 이 변덕?)

창문과 현관문까지 열어 환기를 시키며 설거지를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진짜 공주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