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책/책의 향기

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부끄럼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pjss 2011. 5. 21. 10:27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부끄럼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나는

나의 아들과 딸이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도 늘

“꿈을 꾸어라.”, “꿈을 가꾸어라.” 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나를 돌아보며

‘내가 어릴 적에 꿈이 있었나?’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나?’

생각해보면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다시 태어나도 교사외에 다른 직업은 갖지 못할 것 같지만

처음부터 내 꿈이 교사였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여

운동회나 소풍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하여 응원부에 들어가서 목이 터져라 활약을 했으며

스스로 안무를 짜서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나가기도 하여

지금 만난 그때의 친구들은 나더러

“너는 선생님이 될 줄 알았다.”

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았다.

 

중3 이 되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정을 아신 담임선생님께서

그해 신설된 벌교의 한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하길 권하셔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진로를 결정하였는데

명문학교의 합격률을 높이고 싶은 학교 분위기에 의해

갑자기 순천여고에 시험응시를 하게 되어 합격을 하니

늘 자신의 못 배운 것을 한으로 여기시던 부모님께서

아들자식도 없으니 딸자식이라도 한 번 가르쳐보자며 입학을 시키시어

그 시절 호남의 동부육군에서 명문학교인 순천여고를 어떨결에 다니게 되었다.

 

여고를 다니면서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기도 하고

용돈이라도 벌어보겠다며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막연하게 학비걱정 없는 육군간호학교를 가면 어떨까 생각을 하기도 하고

졸업하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난 광주교육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만 해도 4년제 대학을 가는 친구들도 별로 많지 않았고

적은 학비로 2년만 다니면 취업이 보장되는 교대의 진학을

담임선생님께서 권하셨는지,

아니면 친구들이 원서를 내니까 덩달아 함께 내었는지

난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으니

아마 난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고 꿈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거 같다.

 

어찌 되었든 난 광주교대에 합격을 하여

또다시 못 배운 부모님의 한 덕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성실하지 못한 학교생활이었지만

졸업만 하면 교사 자격증이 주어지고 학교 성적순으로 발령이 나는 제도 덕에

남보다 6개월 늦게라도 교직에 발을 딛게 되었던 것이다.

 

교직의 매력에 듬뿍 빠져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은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며

내가 벌교의 신설학교에 입학을 했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교대에 입학을 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를 했더라면

난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었으며

더욱이 그 길이 더 아름다웠을 거란 생각을 해 본적은 없었다.

 

교직에 몸을 담은 지 23년 되던 해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평교사로 정년퇴직을 하겠다던 그동안의 나의 꿈을 뒤엎으며

승진의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치열한 승진대열에 합류를 하게 된 7년여 시간 동안

평교사의 꿈을 꾸었던 그때보다 당당함을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면서

아직 꿈을 채 이루기도 전이건만

가보지 않은 그 길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핑계로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읽게 된

박완서 님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 제목만으로도 나의 가슴에 울림이 되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 보다는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생 아이들만을 사랑하는 평교사로 남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을 포기하고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해

멋진 학교를 경영하고 싶다며 승진 대열에 들어선

현실적인 교사가 되어 있는 내 자신의 초라함을 진즉부터 마주하고 있었기에

못가본 길에 대한 나의 후회는

단순히 가보지 못한 길이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부끄럼이다.

 

박완서 님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