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교단일기(2008~2009)

아, 지네!

pjss 2008. 6. 29. 12:06
2008년 4월 23일 수요일

아, 지네!

섬에는 지네가 많다는 말은 진즉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3월초부터 신기페를 사다가
방안을 빙 둘러서 칠해 놓았다.
얼마 전부터 자고 일어나면
조그마한 죽은 지네가 발견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신기페가 없었으면 지네와 동침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곤 하였다.

날이 갈수록 지네의 몸이 점점 커지고
교실이나 방에서 발견되는 횟수가 늘어나니 그와 비례해서
나의 공포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급기야 일주일 전에는 농약사에 가서
분말 살충제(갈색의 알갱이)와 액체 살충제를 사와
관사 바깥에 빙 둘러서 뿌리고
액체 살충제는 방안의 장판 가장자리, 창문과 문틈에다  주욱 뿌렸다.
관사 주변에만 가도 살충제의 독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지만
그로인해 지네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충분히 참아낼 수 있었다.
아, 그런데 비가 오는 날 땅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이
살충제에 몸이 닿아 시체로 변해
관사를 빙 들러서 지렁이 시체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뱀이나 지렁이가 유난히 무섭다.
비 오는 날이면 마당에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피해서
이리저리 걸음을 옮겼던 적과
어쩌다 한길 가에 죽어 있는 뱀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음부터는
그곳을 피해 먼 길을 빙 돌아서 다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남들이 좋아하는 전원생활이
좋아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뱀, 지렁이, 모기 등 해충들 때문이다.
아, 그런데 드디어 오늘은 옆 반 남자 선생님이 지네에 종아리를 물리고 말았다.
그러니 별장 같던 관사에 나타나기 시작한 지네와 지렁이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뱀에 대한 공포마저 엄습해오기 시작하니
앞으로 여름을 보낼 일이 꿈만 같다.
‘아, 어쩌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