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7일 월요일
아, 아들!
아들은 할 수만 있다면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난 그럴 때마다
“넌 군대에 가서 철 좀 들어와야 해.”
하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4월 1일 입대를 이틀 앞두고
아들은 씩씩하게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떠났다.
난 아들에게 석장으로 된 편지를 전하는 걸로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4월 3일
“엄마, 저 이제 들어가요.”
“.....”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목이 꽉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응, 너도”
그렇게 아들은 입대를 했다.
나는 애써 아들의 입대 사실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생각의 틈을 주고 싶지 않아서
운전을 할 때도 라디오를 더욱 열심히 들었다.
5일 쯤 지나자 아들의 소지품이 왔다.
네모난 박스에 엄마, 아빠, 여동생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까지
급하게 쓴 편지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편지가 왔다.
군대에 가기 전 대학 생활을 하면서 떨어져 살 때는
편지 한 장 없었고 전화도 잘 하지 않던 아들이라
편지를 보내 준 사실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얼마 후 031로 시작되는 전화가 왔다.
“한국인 어머니세요? 여기 육군훈련소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그때는 마침 나의 목소리가 안 나올 때였다.
그 쪽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지
“잘 안 들리니 전달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국인이가 눈물약과 피부연고가 필요하니
사용하던 것을 보내달라며 국인이는 잘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며
주소를 불러 주었다.
그날 밤 우리 세 가족은 아들에게 긴 편지를 써서 약을 포장하여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의 여자친구한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육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아들의 사진도 볼 수 있고
또 위문편지도 보낼 수 있다는...
당장 육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입영날짜를 확인하니
소대별로 단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국인이가 없었다.
국화를 불러서 확인하고 늦게 들어온 남편과도 확인했으나
어디에도 아들은 없었다.
‘아, 무슨 일일까?’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불안감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좀 피로해서 의무실에 간 사이
사진을 찍어서 누락되었다고 했다.
아무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으나
아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무척 서운하였다.
5월 3일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1사단 카페에 들어가면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그래서 부랴부랴 카페에 들어가니 회원가입을 해야만 했다.
회원가입을 하니 등업을 해서 정회원이 되어야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등업 신청을 하였다.
그래서 드디어 5월 4일 사진을 보았다.
아, 그런데
아들의 사진을 본 순간
이 가슴의 미어짐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아들은 늘 잘 지내고 있다면서
즐겁기까지 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고,
수류탄을 잘 던져서 포상으로
3 분 통화를 할 때도
유격훈련장에서 각계전투를 마치고 동료들과
더욱 친해졌다고 전화가 왔을 때도 목소리가 참 밝아서
난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의 아들은
야윌 대로 야윈 얼굴의 퀭한 눈 밑에는 빨갛게 피로감을 나타내는
다크서클이 앉아 있고, 입술의 위쪽은 검은 딱지가,
아랫입술은 아직 쥐어서 발갛게 부어 있는데
훈련을 받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기를 쓰고 따라했으면
저토록 험한 얼굴이 되었을까?
사진을 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을 남들처럼 튼튼하게 키우지 못한 것부터
그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늘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 까지
심지어는 남자는 군대에 갔다 와야 한다며
군대에 가서 제발 철 좀 들어오라고 큰 소리 쳤던 것 까지 후회가 되었다.
난 어느 새 바보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도
야윈 아들의 퀭한 눈망울과 상처난 입술의 어색한 웃음을
순간순간 떠올리면 어느새 바보 엄마가 되어
빨갛게 눈시울을 붉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모두가 견딜 수 있는 만큼 훈련을 하는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신이 그럴수록 아들을 나약하게 만드는 거야.”
“나중에 엄마가 이런 줄 알면 아들이 웃을 거네.”
하며 위로를 하지만 난 아직은 아들의 그 모습을 떨쳐버릴 수가 없고
바보 엄마에게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난 2-3일에 한 번씩 보내던 편지를 이제는 매일 쓴다.
아들의 힘든 하루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싶어서
일상의 사소한 얘기를 들려주며 대화하듯이,
그리고 온 우주의 힘을 모아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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