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나/가족 이야기

아이들의 성적표

pjss 2008. 6. 29. 03:38
 

 


2006년 8월 2일


아이들의 성적표가 왔다.


허울 좋게 서울에서 대학만 다니지

노는데 정신 팔려 1학년 땐 권총을 두 자루나 찼던 아들!

떨리는 손으로 성적표를 열어보니

그나마 다행히 권총은 안 찼다.

평점은 아직 3점을 못 넘기고....

그래도 권총 차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며

성적표 뒷면을 보니

평점 1.7 이하면 학사경고를 받아

학부모 면담을 해야 한단다.

“휴!”

나도 모르게 순간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고등학교 2학년 딸의 성적표를 보니 더욱 한심하다.

1,2등급은 눈 씻고 찾아도 없고

대부분이 4등급에 체육은 9등급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행평가에 0점이 네 과목이나 된다.

“허어, 참!”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국화야, 이렇게 공부하기 싫으면 우리 잠깐 학교를 쉬어볼까?”

“......”

“조금 쉬다보면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잖아.”

“.......”

“1 년 후이든 2 년 후이든 네가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면 좋겠는데..”

“......”

실망스런 나의 감정을 가까스로 감추고

지극히 교육자다운 어조로 말을 건네지만

딸 국화는 속 터지는 엄마의 마음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좋아?’

“국화야, 그럼 네가 2학기에 올릴 수 있는 등급을 각 과목에 표시해봐.”

잠시 후 가져온 성적표엔 2-3등급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체육은 6등급..

마음에 흡족하진 않지만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

“그래, 네가 한 약속이니 꼭 한 번 지키도록 해라. 그리고 수행 평가는 아무리 못해도 50점 이상은 맞도록 하고...”

“......”


‘아,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수학천재 소리를 듣더니

중학교 2학년 때는 당당히 영재반에 합격해

과외는커녕 학원에도 제대로 못 보낸

엄마의 가슴에 아픈 희망을 주던 아들이었는데,


중학교 반 편성 고사에서는 그 반에 1 등으로 입학하였으나

졸업할 땐 우등상 55명 안에 들지도 못하더니

그래도 고등학교 반 편성 고사에서도 당당히 장학반으로 입학한 딸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들은 아들대로 아직도 목표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고

딸은 딸대로 세상을 등지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난 언제나 내가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자식은 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가끔은 아이들은 만들어(?) 가야 한다는

남편의 주장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남편과 아이들의 문제로 언쟁을 할 때마다

난 마음속으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하루 빨리 증명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즈음은 내가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하나하나 포기(?)해 가며

쉽게 이해해버리고, 용서하는 까닭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제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점수를 매겨보는 시간에

나 자신을 위한 점수에는 그래도 얼마간의 점수를 줄 수 있었지만

엄마로서의, 아내로서의 점수에는 도대체 줄 수 있는 점수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점수를 매기지 못하고 말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그 말엔 동감하면서도

아직도 아이들의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에서

정말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