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8일 금요일
나를 가르치는 우리 아이들
언젠가부터 학교에 한 쪽 귀가 잘린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처음에는 무심코 보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관사나 급식실 주변에서 보이기도 하고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봉투를 뜯어놓기도 해서 귀찮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침 등굣길에 통학버스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고양이에게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소시지를 사서 먹이로 주기도하였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마을에 사시는 분을 불러서 다른 곳으로 보냈는데
며칠이 지나 다시 나타나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고양이를 거의 잊고 지냈다.
11월말에 우리 학교 5,6학년 아이들이 학교와 마을을 돌며
인터뷰하여 기사를 작성한 동강마을신문이 발간되었다.
신문을 보던 중 ‘망고 집을 지어주세요’라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망고?’ 의아해하며 기사내용을 읽어보니
망고는 우리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는 그 고양이에게
아이들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아이들은 고양이가 집이 없어 불쌍하다며
고양이의 집을 지어달라고 기사화 한 것이다.
그냥 넘기려다가 5학년 담임선생님께
아이들이 직접 집을 지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5학년 아이들은 망고 집을 짓기 위해 설계를 하고
우드락으로 가상의 집을 지어보고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집을 짓기 위해
목재다루는 법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완성 된 망고의 집은
교문 앞 히말라야시다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아이들이 마련해준 이불이며 인형들로 채워졌다.
5학년 아이들은 망고 집을 만든 과정의 사진들을 편집해서
동영상을 제작하여 동고동락 열매따기 잔칫날 전교생들에게 보여주며,
망고의 집을 지어주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망고가 따뜻한 집에서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며
내년에는 새들이 쉴 수 있는 새집을 지어서
학교 나무에 달아주고 싶다고 했다.
열매따기 현장에는 커다란 2절지에
망고를 그린 ‘망고 사랑해’ 스티커 판이 등장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스를 체험하여 얻은 스티커를 붙여가며
망고그림을 완성하였다.
어느새 망고는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며 세밑 최강한파가 찾아온 오늘 아침에
교문에 들어서니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히말라야시다 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얼른 주차를 하고 아이들에게 가보니
1,2학년 아이들이 언니오빠들이 지어준 집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는 망고에게 소시지를 먹여주며
망고가 먹을 물이 꽁꽁 얼어버렸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얼음을 버리고 미지근한 물을 물통에 채워주는데
추위에 곱아오는 내 손끝과는 다르게
나의 마음은 빨간 수은주가 한 칸 한 칸 오르며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길 잃은 고양이를 귀찮게만 여겼던 나를 꾸짖듯
오늘처럼 추운 날에도 추위를 잊은 채
망고를 걱정하며 애태우는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 진정 따뜻함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몸소 돌봄으로 보여주며 조용히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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