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도종환
산꼭대기에 서서 보아도 산의 안 보이는 곳이 있다
웅혼하게 벋어 있는
밀려오고 밀려간 산자락의 내력과
육중함을 평범함으로 바꾼 그 깊은 뜻도 알겠고
영원하다는 것은 바로 그 평범하다는 데 있는 것도 알겠는데
산이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올라서서 보아도
다 못 보는 구석이 있다
산 아래 살면서 내 집 창으로 산을 보거나
일터를 오가는 길에 서쪽 벼랑에서 늘 보아오던 모습으로
언제나 그 산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해왔는데
잘 안다는 그 짧음 한쪽에서만 보아온 그 치우침을
오늘 산 위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가까이 있는 산 하나도 제대로 못 보는데
하물며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
꼭대기에 오르기는커녕 말 한마디 깊이 나누어보지 못하고도
얼마나 많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쏟아부었던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보아도 다 못 보는 구석이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