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나주 봉황초등학교 교장 류제경
'입술에 3초, 가슴에 30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러므로 말을 할 때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말입니다.
김경숙씨가 쓴 '행복의 씨앗'이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 다음은 글 잘 쓰는 경숙이가 읽어 보렴."
초등학교 3학년1반 담임 진관호 선생님은 훤칠하게 키가 크시고 잘생긴 미남 선생님이셨다. 단발머리에 주름치마를 입고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던 나비 같은 어린 계집아이가 꿈꾸기엔 너무나 황홀한 상대였던 진관호 선생님.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무심코 던지신 그 한 마디 <글 잘 쓰는...>.
운동장 쪽으로 심어진 긴 화단에서 사루비아가 부끄럽게 익어가던 여름날, 가족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지어오라고 숙제를 내어주셨던 선생님께서는 다음 날 한 사람씩 일으켜 세워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라 하셨다.
나는 그 <글 잘 쓰는> 한 마디에 오금이 저렸고, 그 말은 내 기억의 금고에 종자돈이 되어 숱한 이자를 불렸다.
누구에게나 일생을 통해 가장 가슴에 남는 한 마디는 있겠지만, "너에게 그건 무리야, 그건 하지마라"라든가 "겨우 그것 밖에 못했니?"라는 상처의 말 보다는 "할 수 있어. 힘내!", "문제없어. 넌 분명 해 낼 거야!"라는 격려의 한마디가 무한한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무슨 말로 무한한 잠재력을 깨우게 할까?
반성과 후회가 될 말 보다는 행복의 씨앗이 되는 말을 많이 하고 싶다.
나 자신의 과거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은 그 어느 시절보다 또렷하고 선명하게 가슴 속에 남아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감사와 기쁨,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말씀과 상처와 아픔, 고통과 절망을 주었던 말씀들은 결코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반 친구들 모두가 선생님을 싫어했고 미워했고, 지금도 친구들은 선생님에 대한 어두운 추억만을 이야기합니다. 5학년 어느 날, 단체로 기합을 받고 몽둥이로 몇 대씩 맞은 다음 실습지 양배추 밭으로 김을 매러 갔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김을 매고 있던 제게 다가와 "넌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게 매를 맞았구나. 아프지?" 하시면서 매 맞은 곳을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저는 눈물이 핑 돌았고 그 날 이후로 선생님을 미워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입을 맞추어 선생님을 욕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만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애잔한 그리움과 함께 그 때 실습지에서 하신 그 말씀이 가슴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 말 한마디의 위대함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서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 인해 입은 상처는 평생을 통해 치유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이나 사회에 독이 되었던 사람들이 과거에 누군가 자기에게 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인생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회고하는 이야기나 글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말을 매개로 아이들을 상대하는 우리들은 특히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나 아이들의 가슴 속에 꿈을 주는 말,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말을 많이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나의 말이 아이들에게 혹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를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늘 생각해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말은 부메랑과 같은 것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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