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보물 1호 '약속장' 쓰기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5월호
박점숙/ 전남 광양북초 교사
"선생님, 지금도 약속장 쓰세요?"
졸업을 한 아이들이 편지나 전화 또는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할 때면 꼭 빠뜨리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그러∼엄, 아직도 쓰지."
"선생님, 쓸 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들여다 볼 추억이 있어서 참 좋아요. 후배들에게도 열심히 쓰라고 전하고 싶어요."
"그래? 내가 대신 꼭 전하마."
우리 반은 약속장을 쓴다. 시업식 전날 밤 새로운 반이 될 아이들을 생각하며
'올 한해는 좀더 편하게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머리를 짜며 챙긴 것이 바로 이 약속장이다. 먼저 아이들에게 약소장을 나눠주면서 그 의미를 설명한다.
"우리의 생활은 나와 자신과의 약속, 나와 부모님과의 약속, 나와 친구들과의 약속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약속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와의 약속이든 하나하나 소홀히 하지말고 지켜나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여기 이 약속장에는 우리가 계획한 하루의 약속이 기록되고 그 실천 여부가 체크 될 거예요. 그리고 하루하루 생활해 나가면서 느꼈던 여러분의 느낌 하나하나도 기록 될 것이어요. 이 약속장을 보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우리의 생활 모두가 소중하듯이 1 년 동안 우리 반의 생활 모습이 담길 이 약속장을 우리 반 보물 1호로 정하기로 해요. 그리고 우리 반 모두가 노력하여 멋지고 아름답게 1 년을 가꾸어 보도록 합시다"
"약속장이요? 그게 뭐예요?"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처음엔 그저 알림장 + 일기장 정도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아이들의 인식을 바꾸어 주기 위해 첫 장부터 아주 까다롭게 지도해 나간다. 약속장의 표지와 맨 첫 장은 내가 꾸며준다. 표지엔 약속장 제1권의 타이틀과 함께 각자의 사진을 붙여주고 첫 장에는 좋은 글귀나 시를 적어주곤 하는데 올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을 적어 주었다. 그리고 뒷면엔 새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다짐을 적어보게 해서 붙이고 두고두고 보면서 작은 것부터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것이다.
맨 처음엔 교사가 먼저 약속장의 양식도 그려 준비하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도를 해야 한다. 선을 긋는 요령부터 풀을 붙이는 방법까지 꼼꼼하게 지도하지 않으면 한 권 두 권 약속장이 늘어나면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아이들은 상당히 힘들어한다. 대개 서너 명의 아이들은 첫날부터 잘 정리하여 오는데 이때 아낌없는 칭찬으로 격려해 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 주어야 한다. 교사가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나갈 때면 처음엔 조목조목 따지듯이 점검하여 지적하여주고 어느 정도 그 방법이 익혀지면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여 창의적으로 실천해 갈 수 있게 지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처음에 약속장을 시도할 때는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정리하도록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교사의 관심이 조금만 느슨해져도 아이들은 금방 빼먹고 정리하지 않기 일쑤이고 한 번 빼 먹은 약속장을 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중도에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그럴 때는 억지로라도 쓰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약속장 사망의 날(?)을 만들어 전체적으로 마비된 하루를 보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가위로 안 쓴 부분을 오려보기도 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침 생활 계획 시간과 하교시의 생활 반성 시간을 이용한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 교사와 각 모니터들이 안내해준 하루 일과를 먼저 적으면서 계획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를 듣고 느낌을 적을 시간도 충분히 주어 그 시간에 정리한 후에 약속장을 점검한다. 생활 반성 시간엔 마무리 시간에 모둠별로 내용을 충실히 정리하였는지 꼭 점검하도록 하면 모든 아이들이 빼먹지 않고 약속장을 기록하며 실천해 간다. 그렇게 하여도 일기 쓰는 일에 저항을 느끼는 아이가 한두 명 생기는데 그 아이에게는 매일 일기를 쓰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한두 번 쓰게 하여 부담을 덜어 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약속장을 활용한 생활지도
우리 반은 약속장을 통하여 모든 생활지도가 이루어진다. 매일 하는 일에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느낌을 적기, 부모님께 존댓말 쓰기, 오락, 군것질하지 않기, 교통규칙 지키기등을 지도 하고, 내 방 정리하기(월), 용의 살피기(수), 실내화 걸레 세탁하기(토), 글씨 바르게 쓰기, 바른 TV 시청 등은 요일별로 지도를 하며 학부모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은 싸인을 받아오게 하기도 한다. 또 일요일엔 효경일기를 쓰게 하여 효의 실천을 생활화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일기만 쓰기도 힘든데 날마다 무언가를 적어야 한다는 사실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날이 가고 약속장이 늘어가면 스스로 약속장에 애정을 느끼게 되어 소중히 여기게 되고 학교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가족여행을 다녀와도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하여 정리하거나 어떤 아이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양식을 바꿔 정리하기도 한다.
작년 우리 반이었던 4학년 정국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습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아이였다. 그러나 교사를 잘 따르고 책임감이 강하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력이 강한 아이다. 하루는 약속장을 성실하게 잘 쓰고 일기도 내용을 길게 잘 써왔기에 칭찬을 해 줬더니 날마다 일기를 3장-4장까지 쓰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써오기를 반복하더니 다른 아이들 2 권 쓸 때 5 권을 쓸 정도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일기는 하루 중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 한두 가지만 쓰고 그때의 느낌이나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며, 무조건 양을 많이 쓰는 것이 잘 쓴 일기는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여 겨우 정국이의 일기 습관이 바뀔 무렵, 어느 날엔가 소영이가 띄어쓰기를 띄엄띄엄멀찍이 해서 한 페이지에 몇 자 안 되는 일기 내용으로 장 수만 늘여 쓰기를 해오지 않는가? 조용히 소영이를 불러다가 왜 그렇게 썼는지 물어보니 정국이의 약속장의 권수가 많아 부러워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학부모의 신뢰와 협조가 함께하는 약속장
좋은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을 써 보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글을 고르는 일도 쉽지는 않다. 『선생님 이야기 들려주세요』 『행복한 세상』 『어린이 탈무드』 『이야기 채근담』『어린이 미덕의 책』 등에서 발췌한 내용이나 월간 『좋은 생각』에 나오는 오늘의 이야기를 활용한다. 처음엔 교사가 글을 읽어준 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글의 교훈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자신의 느낌을 적어 보게 한다. 그러면 어떤 아이들은 교사의 의도대로 이야기의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려 적고 그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을 적기도 하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줄거리 간추리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특히 엉뚱하게 느낌을 적기도 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 명 한 명 불러다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적어 보면서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세심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줄거리를 요약하는 힘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중심생각을 잘 찾아내게 되면 이제 낭독을 잘하는 아이들을 골라서 아이들이 돌려가며 이야기를 읽어주게 한다.
약속장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먼저 약속장에 대한 부모님의 이해가 필요하고 학급에서 행해지는 교사의 의도적인 교육 방법에는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의 신뢰와 협조가 절실히 요구된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약속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가정으로 가져가거나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며 약속장에 매달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약속장을 정리하는 일은 학교에서 마치고 가정에서는 일기만 쓰도록 한다. 학년 초 학부모회의 때에는 약속장 쓰기의 취지를 충분히 안내하고, 자주 아이들이 약속장을 통하여 학부모들과 학교생활을 얘기할 수 있도록 1 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부모 확인을 받게 한다.
생활지도를 위한 확인은 학부모가 교사의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여 협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존댓말 쓰기를 지도하다보면 해마다 엄마들이 교사를 속이는 경우가 생겨나곤 한다. 때론 귀찮아서, 때론 우리 아이 혼날까봐 실천하지도 않았는데 ○표를 해서 보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표를 해 주었어도 내가 실천하지 못한 사람은 정직하게 손을 들어 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교육방침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와 협조가 없이는 약속장을 통한 지속적인 생활지도는 어렵다고 보아야한다.
추억이 담긴 약속장 엮어내기
학년말이 되면 약속장 묶음을 만든다. 그리고 그 동안 모아두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날짜에 맞춰 끼워 넣는다. 종업식 날이 가까워오면 친구들끼리 약속장을 돌려가며 서로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말도 해주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인을 하는 등 학급 마무리 잔치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교사가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사인을 하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추억모음집이 된다. 아이들은 약속장을 통하여 더욱더 결속력을 갖게 되고 해마다 반창회 모임 때는 약속장을 들고 나타나 돌려읽으며 추억을 더듬기도 한다.
종업식 날 저마다 가슴에 약속장을 안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약속장 수만큼이나 함께 했던 많은 날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자라나게 했기를, 그래서 우리가 힘들게 정리해온 약속장 묶음이 단순한 추억모음집이 아닌, 앞으로 자라날 우리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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