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아이들, 배움

깃털처럼 가볍게

pjss 2011. 12. 12. 08:52

 

깃털처럼 가볍게

    2011. 사랑교육멘토링 실천 사례

 

1. 첫 만남

 

“선생님, 우리 ○○를 잘 부탁드려요.”

“네, 할머니...”

“엄마, 아빠 없이 키워서...”

“네, 걱정 마세요.”

“아이고, 고맙기도 해라...”

 

지난 3월 가정방문을 간 나의 손을 잡고 연신 눈물을 닦으며 손자의 학교생활을 걱정하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올해 내게 주어진 스물세명의 아이들 중 부모님과 떨어진 채 할머니와 생활하는 아이들이 세 명이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멀리 객지에나마 아빠라도 계셔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라도 하지만 ○○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안계시기에 할머니께서 1학년 동생과 함께 ○○, 두 손자를 책임지고 계셨다. 할머니와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의 성하지도 않던 두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이 자꾸 밟히며 가슴 한 켠을 송곳 하나가 찌르듯이 아팠다.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잘생긴 얼굴과는 달리 몸이 삐쩍 마른 ○○는 수업시간의 적극적인 발표 태도와는 다르게 가끔씩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출처 모르는 돈을 가져와 군것질을 하기 일쑤이고, 걸핏하면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서 돈을 뺏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사실이 발각되면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부정하기도 하여 나를 놀라게 하곤 하였다. 누구보다도 사랑의 지도가 필요한 아이였던 것이다.

 

2. 관계 맺기

 

농어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학생들이 학교에서만이라도 교직원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질과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한 고흥교육지원청의 ‘사랑교육멘토링제’는 ○○와 나를 관계맺음 해줌으로써 한걸음 더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가 정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나의 어설픈 관심이 ○○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움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도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부진교과의 기본학습 정착을 위한 지도를 할 때는 방과후 시간 보다는 중간 놀이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지도하였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전화를 통해 안부를 묻고 방학생활을 파악하였는데, ○○의 할머니는 막걸리 같이 텁텁한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야, 니네 선생님 전화다, 니네 선생님은 어찌나 목소리가 고운지...”

하면서 관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곤 하셨다. 그리고 ○○는 전화에다 대고 마치 엄마, 아빠에게 전하듯이 고주알미주알 방학생활을 얘기하면서 나의 관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좋아하였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에 부모님 없이 지내는 쓸쓸함을 달래주기 위해 추석빔을 마련할 때도 다른 두 명의 학생과 같이 선물하였다. ○○할머니는 조그마한 선물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하여 고마워하며 손수 내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기도 하셨다.

 

필요한 학용품이나 학습 준비물은 필요할 때 미리 챙겨주었으나 ○○의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는 마음은 쉽게 근절되지 않아 학급 또는 교내에서 자꾸 말썽을 일으키곤 하였다. 바른 인성 지도를 위해서 그램책을 읽어주며 간단하게 느낀 점을 써 보게 하거나 일기 쓰기지도를 지속적으로 하였지만 가정과 연계 지도가 안 되는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함께 시간을 갖고 얘기를 나누고 나면 내가 보는 앞에서는 변화를 보이고 모범적인 행동을 하나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학생들에게서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책날개독서연수’를 받으면서 배운 '생활시 쓰기‘를 우리 반 학생들에게 지도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한 줄로 나타내는 ‘짧은 시 쓰기’로 바꾸어 지도하였다. 아직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글로 쓴다는 것을 어려워하고,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기보다는 남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려 하기는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글들이 태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이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사물이나 대상을 보는 마음이 진지하며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고 매월 발간되는 학교달력에도 게재를 해 주니 시 쓰는 시간을 매우 즐거워하고 다른 일에도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실내화 빨기

 

더러운 실내화를 보니

나도 더러운 것 같았는데

내가 빤 실내화가 깨끗해져서

내 마음도 깨끗해 진 거 같다.

 

은행나무

 

어제 은행나무가 꺾여 있으니까

내 몸이 꺾여 있는 것 같았다.

 

날씨

 

날씨가 안 춥게 보인다.

그런데 나와 보면 춥다.

 

시험

 

시험을 칠 때

100점을 받고 싶어

친구 거를 베끼고 싶다.

풀 때는 100점 맞을 거 같은데

채점해 보면 60점이다.

 

이렇게 시 쓰는 시간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를 보며 자신의 행동보다 훨씬 순수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보여주었던 모든 바람직하지 못했던 행동들은 부족한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워 어른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행동이었을지도.....

 

3. 관계 더하기

 

아직은 동화책보다는 만화책을 더 좋아하고 집에 컴퓨터가 없는 탓에 컴퓨터실에만 가면 게임을 하고 싶어 안달하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나 ‘짧은 시 쓰기’ 활동 등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일을 한다면 ○○의 정서는 그만큼 안정되고 나아가 바람직한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을 보내는 일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보내는 일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이 된다면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사랑교육멘토링’ 또한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나의 조그마한 관심 하나가 ○○의 마음에 깃털처럼 가볍게 앉으며 그의 외로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 오직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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