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안찬수
나무는 작은 들꽃에 머리를 숙이고 싶었다
나무는 비바람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도 푸르고 싶었다
나무는 하늘과 땅에 울려 퍼지는 자유로운 목소리를 지니고 싶었다
나무는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싶었다
나무는 냉소에 찬 희망보다도 채찍질하는 절망 속에서 나이테를 키우고 싶었다
나무는 순백의 바람과 함께 나부끼며 노래하고 싶었다
나무는 번개와 천둥 속에서도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대지에 믿음을 보내고 싶었다
나무는 불의 칼날 앞에서도 꿈틀거리며 자신의 존재가 아름답게 타오르기를 꿈꾸었다
나무는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의 그 쉼 없는 운행에 공명하고 싶었다
나무는 수많은 쓰라림을 겪은 뒤에 목관악기와 북채가 되고 싶었다
나무는 따스함과 차가움 사이, 깨끗함과 더러움 사이, 노인과 어린이, 이미 죽은 사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사이 그 모든 간극에 다리가 되고 싶었다
나무는 비옥한 들녘이나 활엽수 우거진 숲속보다도 사람들의 황량한 가슴 지피는 장작이고 싶었다
나무는 둥글게 둘러앉아 밤새껏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사람들 한가운데 피어오르는 모닥불이고 싶었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