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다
「김정운의 남자에게」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다
왜 인간만 말을 하는가?
침팬지의 지능도 상당하다.
도구를 이용할 줄도 알고,
새끼들에게 그 기술을 전수할 줄도 안다.
그러나 말은 못한다.
생존에 필요한 신호를 주고받을 뿐이다.
노엄 촘스키와 같은 언어학자는
인간이 날 때부터
‘언어 습득 기제’(Language Acquisition Device)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능력이 생득적이라는 그의 이론은 참으로 안이한 주장이다.
세상에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누가 못하는가?
아무리 생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도,
무인도에서 자라거나 동물 사이에서 자라면 말을 못한다.
인간의 언어습득이 생득적인 능력이냐 아니냐는 참으로 우매한 논쟁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도 그 능력이 개발이 안 되면
능력 없이 태어난 것과 아무런 차이 없다.
인간만의 독특한 상호작용이 언어습득을 가능케 한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학자라면 언어습득을 가능케 하는 인간만의 상호작용을 설명해야 한다.
어째서 촘스키 같은 학자가
아직도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추앙받는지 난 이해가 안 된다.
거품이다.
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가 언어를 습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어머니와의 상호작용은
‘순서 주고받기’(Turn-taking)다.
인간의 의사소통에는 남의 순서와 내 순서가 있고,
내 순서에는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는 인간 상호작용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태어나면 스스로 움직인다.
인간의 아기만 미숙아로 태어난다. 꼼짝 못한다.
이 아무 생각 없는 아기에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죄다 이렇게 말을 건다.
“아이구, 누가 그랬어? 누가?”
누가 그러긴, 자기가 그래 놓고!
그래도 끊임없이 말을 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아무 반응 없다.
그러나 좀 지나면 아주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누가 그랬어?” 하면 아기는 웃는다.
내 순서가 왔다는 것을 아는 거다.
내 순서가 오면 반응해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배운 것이다.
이 ‘순서 주고받기’를 배워야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순서’를 제때 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폼 날 때, 순서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떤 인간을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
자기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이를 만나면 참 상쾌하다.
내가 폼 날 때, 순서를 주기 때문이다.
유머감각이 좋아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유머는 남에게 ‘웃을 순서’를 주는 가장 훌륭한 ‘순서 주고받기’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할 경우, 사회자가 누구냐에 따라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얼마 전 어떤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사회자는 내가 헤맬 듯 하면 날 시켰다.
어려운 이야기만 나오면 꼭 내게 ‘순서’를 주는 것이었다.
난 매번 “네?”만 연발할 뿐이었다.
방영되는 화면을 보며 난 환장하는 줄 알았다.
화면에 비치는 나는 완전 바보였다.
요즘 난 가는 곳마다 그 인간 욕하고 다닌다.
아주 죽도록 밉다.
리더는 훌륭한 사회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상대방을 폼 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남에게 순서 안 준다.
폼 날수록 자기만 이야기한다.
가끔 머쓱해서 썰렁한 농담 던져보지만, 아무도 안 웃는다.
스스로 도덕적으로 정당하거나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도 절대 남에게 순서 안 준다.
혼자만 계속 이야기한다.
설득력 없는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어설픈 진보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상대방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게 된다.
“그래, 당신 말이 다 맞아. 그래서?”
이해는 했지만 안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절대 이런 방식으로 설득당하지 않는다.
대화가 아니라 강요 혹은 계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수록,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할수록 친구가 없는 거다!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출처 : 한겨레신문(2011년 4월 27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