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내가 더 기분 좋아진 저녁
2009년 6월 2일 화요일
오히려 내가 더 기분 좋아진 저녁
이번 주는 물때가 맞지 않아
주중 내내 우도에서 생활해야만 한다.
퇴근 후엔 화단에 돋아난 풀을 매기도 하고
텃밭에 난 잡초를 뽑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주워온 고동을 삶아서
온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맛있게 까먹고
일곱 시 밤 쯤 되어서 동료교사들과 걷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우도를 한바퀴 돌고
뒷산에 올라가려다 풀이 너무 많이 우거져 있어서
마을 쪽으로 향해 다시 한 번 걷고 있는데
어두컴컴한 언덕배기에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에 눈에 띄었다.
평소 궁금한 것은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어두운 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묻자
에스케이텔레콤 직원들인데 기지국 안테나 업그레이드 공사를 하다가
물때를 알지 못해 제 시간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시 쯤 길이 열리나요?”
“이를 어쩌나? 바닷길이 열리려면 열시 쯤 되어야 하는데.......”
“.......”
“배고프지 않나요?”
“배고파요. 식당은 없나요?”
“네.”
“슈퍼마켓은요?”
“슈퍼도 구멍가게도 없어요.”
“뭐 먹을 것 좀 주세요.”
“아,~네. 그럼 학교 운동장에 있는 평상에 가 계세요.”
“네.”
바닷길을 지나 학교에 돌아오니 아직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미안해서 오지 못하나 싶어 그 자리로 향하여 가고 있는데
저만치 어둠속에서 세 사람이 나타났다.
“왜 이제 오세요?”
“물건을 정리 좀 해 놓고 오느라고요.”
‘무엇을 드리지?’
어려움에 처한 것 같아 따라오라고는 했지만
드릴만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리 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던 차에
평상시에 비상식량으로 비축해둔 라면이 생각났다.
“다른 것은 없고 라면 끓여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옆에 가로등이 설치 되어있는 평상에서 라면을 끓이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서 자리를 교실로 옮겨 라면을 끓여 드렸다.
달랑 김치 하나에 라면 한 그릇이지만 그 분들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셨다.
마침 어제 교감선생님께서 교담 수업하러 오시면서
사 오신 수박이 냉장고에 있어서 썰어드리니
설거지는 자신들이 하겠다며
고무장갑을 뺏어서 설거지를 하시는 그 분들,
바닷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라며 텔레비전을 켜드리자
함께 옆에서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의 시간을 뺏고 있는 게 미안하다며
평상에 나가서 기다리겠다고 하시던 그 분들,
조그마한 베풂에도
고마워 할 줄 알고
미안해 할 줄 아는 그 분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 저녁나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