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은행잎
한 가지 사실을 놓고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른 까닭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이 자라온 환경,
그리고 경험으로 누적된 사고에 의해 판단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학교 현관 앞 잔디밭엔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가을이 우리 학교를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쌓이기 시작했다.
나무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수북이 쌓여 있는 은행잎은
눈이 귀한 우리 남도에 마치 노란 눈이 내려 쌓인 것 같기도 하고
동화 속 페르시아의 황금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참 보기 좋았다.
어제 퇴근할 무렵
이 주사님이 긴 장대로 은행잎을 떨고 계셨다.
“아니, 왜 은행잎을 떠시는 거예요?”
“바람에 자꾸 날리니까 한꺼번에 떨어서 쓸어버리려고요.”
“네에?”
“.......”
“이렇게 예쁜 은행잎을 왜요?”
“뭐가 예뻐요? 허허”
“이 주사님, 그냥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놔두세요.”
“그럼 바닥이라도 쓸어야겠네요.”
“아니에요. 그냥 두세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그럼 나무위에 쌓인 거라도.......”
“아니에요, 눈이 쌓인 것처럼 보기 좋으니 그냥 두세요. 네!”
막무가내로 비를 들고 오셔서 은행잎을 치우려는 이 주사님을
가까스로 말리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오늘 중간놀이 시간에 아이들은 은행잎이 깔려 있는
노란 잔디밭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은행잎을 날려보기도 하고
또 뒹굴기도 하며
한껏 가을을 만끽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보니
어제 그렇게 많이 달려있던 은행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밤새 서리가 내려 예쁜 국화도 시들어 탈색이 되었는지라
은행잎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거라고만 생각하며
떨어진 은행잎이라도 오래 보존하며
아이들이 좀더 오래 가을을 만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타지연습을 하느라 7시쯤 되어서 퇴근을 하려는데
문단속을 하러 오신 이 주사님께서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며 하신 말씀
“저기 은행잎을 다 떨어서 깨끗이 치웠습니다.”
“네~에?”
“두 포대나 되던걸요?”
“아니, 아 주사님 치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게 그래도 좀.......”
아, 그 예쁜 은행잎이 이 주사님 눈에는 치워져야할 쓰레기로만 보인 것이었다.
옆에 있던 진상이도
“아까 세은이랑 함께 뒹굴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그랬는데.......”
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 20여년을 넘게 몸담고 계신 학교생활에서
연례행사처럼 해 오신 일이기에
아주 당연하게 하시고는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이 주사님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으며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면서 보았던
순천 시내의 도로가에 심어진 가로수인 은행나무를 떨고 있던
미화원 아저씨들의 모습이 영상처럼 스치며
하나의 은행잎을 보며 한 사람은 아름다움으로,
다른 한 사람은 쓰레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 사진이라도 한 컷 찍어 놓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