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전쟁
2008년 9월 10일 수요일
가을밤의 전쟁
풍요를 향해 배불러 가는 달그림자에
은빛 물결 반짝거리고
살랑살랑 실바람 타고 들려오는
이름 모를 풀벌레 합창소리에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오랜만의 여유에 책장을 넘기는 섬마을 아줌마!
“에~~엥~~?”
네 평 남짓한 나만의 작은 공간에 침입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날쌘 파리 한 마리!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 애써 달려온 탓인지
아니면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공을 자축이라도 하는 건지
들어오자마자 잠시를 앉아 있지 못하고
온 방안을 휘저으며 괴성(?)을 질러댄다.
“에~~엥~~!”
이 좋은 가을밤을
잔인한 살생으로 망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공생하기를 기다리건만
그놈의 혈기 왕성한 파리 양반은 잠시를 가만히 있어 주질 않고
나의 여유를 훼방 놓기 시작한다.
그냥 무시하고 책 속의 글줄을 따라가 보지만
이건 또 무슨 심사?
자꾸만 신경이 곤두서고
모처럼 찾은 여유가 긴장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조급함으로.......
“아, 방해 받기 싫어.”
생각과 동시에 방문을 열고
마루에 걸어둔 파리채를 들고
파리와의 전쟁을 위한 무장을 한다.
그런데 이놈의 파리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렇게 부산을 떨던 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 방문을 열 때 밖으로 나갔나보다.’
잘되었다 싶어서 다시 책을 들고 집중을 하려는데
“에~~엥~~!”
마치 어딘가 숨어서 망이라도 본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나타나 나를 약 올리듯
온방을 다시 휘젓는 파리!
다시 파리채를 쥐고 공중을 휘저으며 파리를 따라가 보지만
그 날쌘 파리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야, 이놈의 파리!”
공생하겠다던 잠시 전의 생각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이제 잡히기만 해 봐라!”
전쟁을 선포하며 눈에 불을 켜고 팔에 온 힘을 집중하여 공격하지만
파리채는 연신 헛방을 치기만 한다.
“허 참! 파리 저 쬐끄만 놈이 나를 놀려?”
나는 이미 몇 분전의 여유로운 내가 아니다.
어느새 저 쬐끄만 파리와 자존심을 내 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짝!”
“허~엇”
“얏!”
한참을 헛방을 치다 생각하니 이게 무슨 꼴인가?
난 그저 나의 조용한 시간을 되찾고 싶은 작은 이유이지만
저 파리에게는 목숨이 오가는 생존에의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슬그머니 분노가 가라앉고
파리를 잡기 위해 휘두른 나의 폭력에
목숨을 걸고 항거했을 파리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가만히 내 방의 불을 끄고 방문을 연 후 마루의 불을 켠다.
그리고 파리가 마루로 나가기를 기다리다 방문을 닫으니
‘아, 이러면 되는 것을 .......’
생각을 바꾸고 나니 다시 찾아진 나의 여유로운 공간!
다시 방안으로 들려오는 풀벌레의 향연에 몸을 싣고
책장을 넘기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