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를 전학시키겠어요.
2008년 7월 16일 수요일
우리 애를 전학시키겠어요.
3학년 은애를 전학 시키고 싶단다.
아이를 한 명 전학시키면 학급이 줄어들고
그러면 교사가 한 명 전근을 가게 될 것이니
가족 전체가 이사를 가지 않는 데도
언니가 결혼을 해서 신혼 사림을 차린 순천으로
한 달 만 전학을 시켰다가 교사 이동이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전학을 오겠단다.
처음에 은애를 전학 시키고 싶은 이유는
옆 반 김 선생님을 내쫓기 위해서 전학을 시키고 싶다고
도교육청에 근무하는 은애아빠 친구에게 얘기를 했다는데
그 친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김 교사가
은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여부를 확인하니
이제는 김 교사에게는 유감이 없고
올해 여교사가 한 명 온다하기에
은애를 잘 돌보아 줄줄 알았는데
늘 잘못을 지적하고 꾸중을 하기 때문에 나를 내쫓기 위해서
전학을 시키려 한다는 것이라고 했단다.
내가 은애의 잘못을 지적하고 지도를 한 것은 사실이다.
3,4월엔 늘 9시가 훨씬 넘은 시각인
9시 20-30분경에 등교를 하기에 불러서
아침 일찍 등교해서 책 읽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아침 활동 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1교시가 시작되는
9시 이전엔 등교를 해야 한다고 지도를 했었다.
그리고 300m밖에 안되는 거리를
교실 앞까지 엄마가 책가방을 들어다주기에
은애를 불러서 스스로 들고 다니라고도 했다.
다섯 명 밖에 안 되는 아이들 중에
유독 3학년인 은애와 2학년인 진상이만이
다툼이 잦아서 그때마다 불러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게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4학년 복식 학급의 은애와 영은이의
공주와 시녀 같은 관계맺음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그것을 고쳐보려고 애를 썼었다.
은애는 모든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않고
영은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은이는 은애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마치 자신이 해 주어야만 하는 것처럼 챙겼다.
물론 어떤 장애가 있어서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은애는 학업성취도 면에서 4학년 영은이보다 월등하다.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떨어진다기보다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은이는
'아이, 어떡해......?'
하는 은애의 말 한 마디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아이를 불러다 자신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지적을 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는 은애가 사용한 컵은 은애가 씻도록 하고
은애의 책가방은 스스로 챙기게 했으며
은애가 버린 우유팩은 은애더러 치우도록 했고,
은애가 쓴 걸레는 은애더러 빨도록 했다.
수영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수영모를 쓰면서 어려워했지만
금방 달려가서 도와주려는 영은이를 제지하고는
끝까지 혼자서 하도록 기다려 주었는데
그 모든 것이 은애를 꾸중하는 것으로만 보여 졌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은애 엄마는
작년까지의 학교운영에 관한 일 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의 사소한 일에 대해서 까지도 자세히 알고 있으며
올해 들어서는 학교 꽃밭을 가꾸는 일,
운동장의 풀을 매는 일,
심지어는 학습이 부진한 영은이를 위해서 열심히 지도하시는
담임교사의 교수학습방법까지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학부모가 학교의 일에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사사건건 간섭하려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적당한 선에서 차단을 하기도 하였다.
학년 초 분교장 운영계획을 안내할 때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방과후학교’ 시간에 배운 한자 실력으로
한자능력급수 시험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는데
얼마 후 학교를 찾아온 은애 엄마는
혹여 그러한 일로 은애에게 심적인 부담을 주게 되면
안된다는 걱정부터 할 때도
오히려 아이의 홀로서기를 부모가 방해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나
어려운 일에 도전을 해 보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라며
아이에게 강박적인 지도를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만 했었는데.......
몰론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돈독하여
서로 협의하고 도와가며 아동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학부모가 오직 자신의 자녀만을 위한 일에 앞서거나
모든 학교의 시스템을 자신의 자녀를 위해 맞추려 한다든지
학부모의 위치로서 보다는 교사를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려 한다면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사실 학년 초에 은애 아버지로부터 온 전화 내용 중
진상이가 은애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라고 하면서 진상이의 커온 과정을 문제 삼을 때
목회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지난 4월쯤
옆 반 김선생님이 싫으니 아이를 전학시켜 내쫓고 싶다는 말을
은애 어머니가 했을 때도
학교운영에 있어서 학부모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은 화되
함부로 휘둘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
은애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고쳐보려 한 나의 교육적인 행동이
이렇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오늘 본교에서 만난 한 어머니도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서 하는 얘기가
1학년 2학년 학부모들이
담임교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아이를 전학시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만히
지난 3월 이후 분교장에 들어와 생활한 나를 돌아보았다.
사철 꽃 피는 학교를 가꾸기 위해
학교 화단과 학교 주변에 나무며 화초를 심었고,
3월 말 쯤 학부모들의 건의에 의해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도록 그네를 설치했으며
철봉이며 늑목도 낡은 것을 땜질하여 수리하고
낙후된 미끄럼틀도 철거를 하고
교육장님의 특별 지원으로 새 미끄럼틀도 설치하였다.
냉방 시설이 안 된 두 교실에 에어컨도 설치하고
국기게양대 설치며 화장실 문짝을 다는 등
아이들이 편리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분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교육적인 지원에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면서도
낙후된 섬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혜택을 주고자
본교 아이들은 엄두도 못내는
소풍가방, 운동복, 어린이날 선물, 수영복에 튜브까지
분교장 운영비에서 할 수 있는 항목은 다 찾아서 지출을 하고
딸기체험학습, 고흥읍 나들이, 자장면체험, 피자, 통닭 등
섬에서 맛보기 어려운 음식들을 맛보이기 위한 노력들뿐만 아니라
세은이를 ‘더불어 입학식’에 참가시키기 위한 노력,
심지어는 학력 평가 우수상 상품을 선정할 때
본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1만 원 권 도서상품권을 고집하면서도,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을 위한 교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러한 일이 있고 보니
그러한 일조차 은애 부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의문스럽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동료교사나 지역주민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실 3월 우도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분교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교사 두 분에 여교사 혼자지만
주사님 한 분을 포함한 우리 넷은
한 솥밥을 먹고 사는 한 가족이 되어 지내고 있다.
물론 진상이와 세은이(점심)도 포함해서.......
퇴근 후면 가끔씩
고막, 낙지, 바지락, 전어, 새우, 오징어 등을 가져와서는
우리 교사들과 술 한 잔씩을 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지역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길에서 만나면 웃으며 반기는 주민들이나
나의 조그마한 친절에도
“우리 분교장님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주민들,
가끔씩 우리가 물때와 맞지 않게 출장을 가게 될 때면
자신의 고깃배로 우리를 실어다 주고는
조그마한 사례도 받으려 하지 않는 고마운 주민들을 보면서도
그 모든 게 지난해부터 분교장에 근무하면서
지역주민들과 돈독한 덕을 쌓아온 동료교사 김 선생님의 덕도 있지만
나 또한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었는데.......
오늘 그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듯한 이 느낌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교사는 학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사도 나름대로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근무지역의 이동이나 승진 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아니면 자신의 상황에 맞는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오직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벽지 근무를 희망하는 교사도 있으나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벽지 근무를 희망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사실을 교사의 약점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교사를 쫓아내기 위해서 아이들 전학을 시키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교직 경력 28년째인 나,
스물여덟 해 전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만난 4학년 영철이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철이는 몸집은 작으나 4학년답지 않게 성숙이 빠른 아이였다.
두뇌도 우수하고 생각도 깊어
어찌 보면 초임교사의 나에겐 버거운 학생이었다.
나는 애어른 같은 그 애가 든든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불편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교사를 잘 따르는 그 애에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애정을 주지 않고 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2학기가 되면서부터 영철이의 결석이 잦아졌다.
이유도 없이 지각을 하거나 무단결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퇴근 후에 산을 두 번 넘어야 찾아가는
그 애 집의 가정방문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그 애가 왜 학교에 흥미를 잃어 가는지를.......
단순히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 탓으로만 여기며
그 애를 만날 때마다 학교에 나올 것을 간곡히 당부하기만을 반복했었다.
영철이의 반항이 단순히 아버지 때문만이 아니라
나의 편애가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로부터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어느 때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예뻐하지 않았던 마음이 영철에게 전달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면서부터 나는 나의 교사의 자질 없음에 자괴감을 느꼈고
영철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고루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 후로 나는 줄곧 아이들을 고루 사랑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래서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는 나와 새롭게 시작하자는 얘기를 꼭 했으며
내가 가르친 많은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은 선생님으로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내 자신 스스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적인 지도를
한다고 자부해 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