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민주주의 실천하는 '존엄성 토론회'
학급 민주주의 실천하는 '존엄성 토론회'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8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존엄성 토론회'로 우리 반 규칙 만들기
"선생님, 대현이가 놀려요."
"선생님, 경호가 때렸어요."
"선생님, 영만이랑 철현이가 싸워요."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때마다 우리 교사들은,
"하지 말아라."
"왜 또 그런 짓을 하니?"
"다시 한 번 더 그러면 정말 혼난다."
수없이 새로운 말들로 아이들을 타이르거나 꾸중을 하고 또 벌을 주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로 반성을 한다. 그러나 언제 꾸중을 들었는지, 언제 벌을 받았는지 돌아서면 그만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또다시 사건은 일어나고 훈계하고 벌을 주기를 반복한다.
우리 반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존엄성 토론회'를 연다. 처음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시간에 정기적으로 토론 시간을 가졌다. '존엄성 토론회'를 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바꿔주는 일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태어나면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권리를 스스로 지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높이는 일도 해야겠지만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아야 합니다. 흔히 친구들간에 아무 생각 없이 놀리고 때리거나 따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내 자신은 별 뜻 없이 한 일일지라도 상대방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면 그런 모든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남에게서 존중받고 싶듯이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또 스스로 노력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반은 매주 금요일 '존엄성 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자신이 존엄성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고발을 하고 그 고발 내용으로 우리 반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갖겠습니다. '존엄성 토론회'는 친구를 고발하여 비난하는 자리가 아니고 친구의 부당한 행동이 주는 피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더 이상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반의 규칙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들 내가 우리 반의 주인이기에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말이 끝나면 아이들은 내가 힘주어 얘기한 존엄성에 대한 생각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장난기만 발동하여 그때부터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에 교실 여기저기서 서로 고발해라 마라 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너, 고발한다."
"야, 내가 너 때렸다. 어쩔래? 고발해라."
"선생님, 종식이가 고발해라며 더 놀려요."
별명 부르기를 주제로 한 '존엄성 토론회'
맨 처음 '존엄성 토론회'를 여는 날이다. 아이들은 의자를 가지고 교실 가장자리로 빙 둘러앉아 어느 곳에서나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는 교사가 먼저 교실의 분위기를 잘 잡아주어야 한다. 자칫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이나 손짓을 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너무 허용적이면 장난으로 흘러버리고, 또 너무 엄격하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기 쉬우니 예전의 존엄성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 후, 차분하면서도 참여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서 아이들을 둘러보며 얘기한다.
"어디 누가 사회를 볼까?"
예상대로 역시 조용하다.
'어떡하면 좋지?'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는데
"저요. 제가 사회를 보겠습니다."
구세주처럼 학급 회장인 동환이가 손을 들어 준다.
마음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고 처음엔 내가 선창을 하면 동환이가 따라 하는 식으로 진행을 유도해 나간다.
"지난 한 주 동안 자신의 존엄성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고발을 해 주십시오."
사회자의 말이 끝나면 아이들은 일순간 침묵한다. 어쩌면 고발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지 않는 우리의 문화 때문인지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친구를 고발해' 하는 경우이거나, 때론 정말 고발하고 싶지만 후환(?)이 두려워 고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아주 가벼운 그리고 규칙을 만들기에 적절한 사건을 교사가 들춰 내어준다.
"미현아, 저 번에 윤식이가 너더러 뚱순이라고 놀렸다며?"
"네."
"그때의 기분이 어땠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어요."
이쯤 되면 성공이다.
"그럼 우리가 처음으로 하는 '존엄성 토론회'의 주제는 '윤식이가 미현이의 별명을 부른 일'로 정하자."
사회자 : 먼저 미현이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피해를 입은 상황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 현 : 윤식이는 맨 날 나만 보면 뚱순이라고 놀립니다. 어제도 점심시간 끝 나 고 교실로 들어오려고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저에게 뚱순이라 놀리며 물을 뿌리고 도망갔습니다.
사회자 : 윤식이에게 묻겠습니다. 미현이의 말이 사실입니까?
윤 식 : 네.
사회자 : 그럼, 오늘 토론회를 갖기 위해 미현과 윤식이를 변론할 친구를 정하겠습니다.
이럴 때면 대부분 여학생은 여학생 편을 남학생은 남학생 편을 변론하겠다고 손을 들기 쉽다. 그러면 변론의 목적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남녀 관계를 떠나서 보다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라고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또 피해를 입은 사람의 변론은 서로 하겠다고 나서지만 누가 봐도 잘못을 한 것 같은 고발을 당한 사람의 변론은 쉽게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 처음엔 교사가 변론자로 나서서 어떻게 변론을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자 : 먼저 미현이는 윤식이가 놀렸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얘기해 주십시오.
미 현 : 네, 저는 그럴 때마다 윤식이가 밉고 화가 납니다. 어떨 때는 내가 힘이 세 다면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회자 : 윤식이는 왜 미현이를 놀렸는지 얘기해 주십시오.
윤 식 : 미현이의 별명이 뚱순이입니다. 우리 반 누구나 별명이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별명을 불러도 웃기만 하는데 미현이만 성질을 냅니다.
사회자 : 이제 양쪽의 변론자들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먼저 윤식이의 변론을 맡은 성호가 변론을 해 주십시오.
성 호 : 윤식이의 말대로 우리 반 누구에게나 별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름보다도 별명을 부르면서 더 친해지기도 하는데 별명 좀 불렀다고 화를 내는 것은 미현이의 성격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 숙 :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별명은 있기 마련이지만 불러 주어서 듣기 좋은 별명이 있고 불러주면 기분 나쁜 별명이 있습니다. 윤식이는 미현이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을 불러서 기분이 나쁜 것이지 결코 미현이의 성격이 나쁜 게 아닙니다.
성 호 : 어떤 게 듣기 좋고, 어떤 게 기분이 나쁩니까?
지 숙 : 예를 들면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부르면 기분이 좋겠지만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부르면 누구나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저도 친구들이 똑순이라고 불러주면 기분이 좋지만 지렁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므로 윤식이는 미현이에게 사과를 해야합니다.
사회자 : 윤식이는 사과를 할 마음이 있습니까?
윤 식 : 네, 저는 그냥 재미있어서 그랬는데 인권을 침해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사회자 : 미현이는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미 현 : 네.
여기에서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친구를 정하여 미현이를 설득하게 하기도 하고, 윤식이에게 어떤 벌칙을 주면 용서하겠다고 미현이가 얘기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흔히 잘못을 한 아이에게 벌을 주기를 원하기 쉬운데, 사과를 하거나 벌을 주기보다는 별명을 부른 일에 대해 우리 반이 어떤 규칙을 정할 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함을 항상 상기 시켜야 한다.
사회자 : 그럼 여기에서 우리 반 친구들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친구의 별명을 부르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여기 저기서 별명을 불러도 좋다, 아니다, 별명을 부르면 기분이 나쁘다, 좋은 별명만 부르자, 그러면 재미가 없다, 기본적으로 놀리기 위해서 부르는 것은 나쁘다....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온다. 그래서 스스로 학급의 규칙이 한 가지 필요함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자 : 그럼 우리 반에서 다시는 별명을 불러서 존엄성의 피해를 입는 사건이 생기면 안되므로 별명을 부르는 일에 대한 규칙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젠 별명에 대한 규칙을 어떻게 정할 지에 대해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반에는 '각자 하나씩 듣기 좋은 별명을 정하고, 그 별명을 부르자.'라는 새로운 규칙이 생겨나게 된다. 물론 기분 나쁜 별명을 불렀을 때 아침 봉사활동을 일주일 한다는 강한 벌칙과 함께.
토론으로 만들어지는 민주적인 학급 규칙
몇 년 전 6학년을 담임할 때의 일이다. 봄 소풍을 갔는데 학급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존엄성 토론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학급놀이를 하는데 강진이가 지현이와 싸워 삐쳐서 놀이에 참석을 하지 않아 우리 반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니 '존엄성 토론회'를 열어 해결해야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소풍을 와서까지 '존엄성 토론회'냐며, 친구를 설득해서 함께 놀라며 만류해도 막무가내인 우리 반 아이들은 소풍 내내 줄곧 '존엄성 토론회'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 나름대로 전체 놀이에 혼자만 빠지는 것은 반 전체에게 피해를 주므로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참고 참여해야 한다는 거창한 학급규칙을 만들어 냈다.
학년말에 학급 문집을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소풍을 가서까지 놀지도 못하고 연 존엄성 토론회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써 놓기도 했다.
'존엄성 토론회'는 잘못된 행동을 한 친구를 벌주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반 모두가 서로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서 하나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터득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존엄성이 잘못 인식되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나의 인권만 보호받으려고 할 수도 있으니 교사는 언제나 그런 점에 유의하여 지도를 해야한다.
'존엄성 토론회'를 열다보면 때론 아이들이 규칙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끌고 가거나, 어설플 때도 있지만 우리 어른들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때가 있어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어떤 규칙보다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학급 어린이회를 통해서든 존엄성 토론회를 통해서든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면서 학급에 작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아이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