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기쁨'과 함께, 우리 반 생일 잔치
'주는 기쁨'과 함께, 우리 반 생일 잔치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7월호
박점숙 / 전남 광양북초 교사
♬ ∼햇빛처럼 찬란히
샘물처럼 드맑게
온 누리 곱게곱게 퍼지옵소서
뜨-거운 박수로 축하합니다
** 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생일이나 돌아오면 미역국에 흰쌀밥, 달걀말이를 겨우 먹을 수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생일 잔치를 연 친구가 있었다. 잔치라 해봐야 떡 한 시루 쪄서 나눠 먹는 게 고작이었지만 난 지금도 3월 초쯤에 복덕이의 생일 날 먹었던 그 달콤한 보릿잎 시루떡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누가 어떤 떡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보릿잎 시루떡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떡을 해서 친구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복덕이네의 여유는 또 얼마나 부러웠던지....
요즈음 아이들은 생일이 돌아오면 아주 거창하게 생일 파티를 열기도 한다. 먼저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초대장을 돌리고 피자 집이나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열면 초대받은 아이들은 그에 맞는 선물을 준비하느라 고민을 하고 부모님께 떼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초대를 받아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생일 때 파티를 열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참석을 하지 않기도 한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주고 또 생일을 맞아 친구들에게 잔치를 열어 주는 것은 우리 인류가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하여 왔던 미풍양속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생일 파티를 여는 친구들을 축하해 주기보다는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허락된 상황에서 마음껏 놀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좋아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친구들의 거창한 생일 파티를 보면서 마음에 상처를 입지나 않은지, 또 주는 정 받는 정으로 아름다워야 할 생일잔치가 마치 내 아이 기 살리기 위한 방편이나,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부모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자못 염려스러운 마음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잔치를 열고 축하 받을 기회를 부여하며 그것을 통하여 진정한 '주는 기쁨'을 누리게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게 우리 반 생일 잔치이다.
매월마다 우리 반 생일 잔치를 열기 전에 난 아이들에게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났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은 무엇인가 쓸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이 세상을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아울러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으며 또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해야 해요. 그리고 나와 함께 같은 세상을 열어갈 친구의 태어남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어야 해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서로를 축하해 주기 위해 우리 반은 매월 생일 잔치를 열겠어요. 서로 축하하고 축하를 받으며 우리 모두 받는 기쁨과 주는 기쁨으로 서로 조화된 아름다운 생일 잔치를 열어보기로 해요." 라고 생일 잔치를 여는 취지를 설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잔치를 연다는 말만 듣고도 좋아서 환호성을 지른다.
'주는 기쁨'을 누리는 선물 마련하기
먼저 매월 말일이 가까워 오면 아이들에겐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 주는 마음으로 정성껏 개인 선물을 준비하게 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 마련할 수 있는 선물을 최대한 정성껏 준비해 보고, 그게 어려우면 500원 이하의 선물을 준비하되 자신의 용돈으로 해결하게 한다.
작은 선물일지라도 꼭 마음이 담긴 편지를 넣어 포장에 정성을 다하도록 하여 선물의 가치를 높이자고 힘주어 설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가 정성껏 만든 그림엽서나 평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인형, 만화책, 아끼던 수첩 등을 준비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나 그림 등을 코팅하여 가져오기도 한다. 또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한 개, 공책 한 권에도 온 정성을 다해 포장을 하며 마음을 쏟는다. 이 때 난 아이들이 선물은 받을 때도 기쁘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선물을 고르면서 받을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까? 떠올리며 누릴 수 있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처음엔 아이들이 자기와 친한 친구의 선물만을 준비하여 어떤 아이는 모처럼 맞은 생일 잔치에 선물을 준 친구가 너무 적어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입장보다는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 보고 또 내가 선물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에게 선물을 주도록 하라고 얘기를 하면 아이들은 생일이 든 친구 모두에게 고루 선물을 준비하여 나눠주는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마련한 선물은 아이들의 덕담과 사인으로 엮어진 책받침이다. 먼저 A4 용지에 반 아이들 모두가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하고싶은 말을 적고 사인을 하게 한다. 이때 아이들이 적은 글을 보면 대부분 ' 야 생일 축하해' 이라고 적어 버린다. 그래서 한 면에는 친구를 칭찬하는 말을 쓰고 다른 면에는 명언이나 책에서 읽은 좋은 글을 적어주어 친구가 생활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적도록 안내를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친구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좋은 말을 써주자며 좋은 말을 쓰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게 한다.
아이들이 돌려가며 좋은 말들을 적고 나서 그림을 잘 그린 친구가 예쁘게 마무리짓고 색칠을 하여 코팅하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근사한 책받침이 된다.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칭찬이 적힌 이 책받침 선물을 좋아한다.
얼마 전 8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의 엄마를 우연히 만났는데 이 책받침 이야기를 하셨다. 딸이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로 가려고 짐을 챙기다 생일 책받침을 발견하였는데,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정성이 담긴 책받침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의 짐 속에 챙겨 가더라 하시며, 요즈음 아이들은 귀한 게 별로 없어 뭐든지 버리기를 좋아하는데, 딸이 소중하게 간직할 추억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께 새삼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요리 솜씨 뽐내며 잔칫상 준비하기
처음 생일 잔치를 시작할 무렵엔 생일 잔칫상을 내가 마련하였다. 아이들 숫자대로 마련한 쵸코파이와 요쿠르트가 고작이었지만 요쿠르트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고 가운데에 쵸코파이로 탑을 쌓아 맨 꼭대기 층에다 촛불을 켜면 그런대로 근사한 잔칫상이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잔칫상에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그러면 나는 생일 잔치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그렇게 잔칫상을 마련하다 보니 아이들이 생일잔칫날이 돌아오면 아주 당연한 듯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늘 받는 데에만 익숙해진 탓인지 선생님께서 잔칫상을 마련해 주니 고맙다는 생각을 하기는커녕 더 좋고 맛있는 걸로 근사하게 상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게 아닌데?'하는 마음이 들어 생각한 게 생일을 맞은 친구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일을 맞은 친구가 잔칫상을 마련하도록 하였더니 생일을 맞은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모여서 떡, 과일, 음료수 등을 준비하여 오신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야 근사한 잔칫상에 배불리 잘 먹으니 좋아하지만 괜히 부모님께 부담을 주게 되고 내가 잔칫상을 마련할 때와 다를 게 없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에 어느 날 실과 실습을 하면서 떠오른 게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만든 뷔페 잔칫상이었다.
생일 잔칫날이 돌아오면 하루 전에 각 모둠에서 만들 음식을 정한다. 주로 결정되어지는 요리는 떡볶이, 김밥, 김치전, 샌드위치, 오징어 튀김, 오뎅 등이다. 그러면 내가 제철 과일을 이용한 샐러드나 과일화채,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한두 가지 권하기도 한다. 주로 5-6모둠이 각기 따로 요리를 하니 음식 가짓수도 5-6 종류가 된다.
잔칫날이 되면 한 시간을 이용하여 요리를 한다. 음식의 양은 반 전체 아이들이 먹을 수 있어야 하므로 어떨 때는 가짓수를 줄이고 한 가지 요리를 두 모둠에서 하게 하기도 한다. 과학실이나 실습실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요리가 끝나면 음식을 교실로 가져와 뷔페 식단을 만든다. 책상을 가지런히 놓고 종이 커버를 씌운 후 쟁반에 담긴 요리를 차려 놓으면 그야말로 근사한 잔칫상이 마련된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마련한 쵸코파이 상보다, 어머니들이 마련해준 음식상보다도 훨씬 자신들이 만들어 마련한 뷔페 잔칫상을 좋아한다. 음식을 만드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스스로 마련해 놓고도 너무나 멋지게 차려진 먹음직스런 뷔페 상을 보고 감격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함께 나누는 기쁨이란 내가 힘주어 말하는 백 마디의 말보다도 스스로 체험하면서 배워지는 것임을 느낀다.
생일 잔치의 흥을 돋우는 축하공연
뷔페 상이 차려지면 행사모니터들은 주인공이 앉을 책상과 의자를 배열하고 식순이 적힌 종이와 [ 월의 생일잔치] 타이틀, 주인공이 속해있는 모둠에서 창의적으로 꾸며 쓴 주인공 이름을 칠판에 게시하여 잔치를 열 준비를 한다. 잔치는 식순에 의해 진행모니터의 안내로 진행된다.
주인공이 입장하면 팡파르가 울리고 모두들 힘찬 박수로 맞이한다. 주인공이 자리에 앉으면 진행 모니터가 촛불을 점화하고 먼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부모님과 고마운 분들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기도가 끝나면 다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다음엔 촛불 소화를 한 뒤 선물 증정을 한다. 선물은 먼저 주인공이 속한 모둠의 도우미가 반 전체가 마련한 선물을 전달하고 나서 반 아이들이 차례로 나와 각자 마련한 개인 선물을 전달한다. 선물을 전달하며 친구와 악수를 하거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말, 고마움 등을 표시하도록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준다. 선물 전달이 끝나면 생일을 맞은 친구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음식을 먹을 것을 권한다. 그러면 한 명씩 나와 개인 접시에 적당한 양의 음식을 덜어가 먹으면서 준비한 친구를 위한 축하 공연을 한다.
축하공연은 전 날 미리 진행모니터에게 신청을 하게 한다.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생일잔칫날이 돌아오기 오래 전부터 연습하여 중창을 하거나, 시를 지어 낭송하기, 바이올린이나 리코더, 멜로디언 등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기도 하여 잔치 분위기의 흥을 돋운다. 친구들의 축하공연이 끝나면 주인공들이 자신들을 축하해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공연을 하게 한다.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만든 최고의 선물
이렇게 식순에 의한 진행이 끝나면 다음날 학급 게시판에 주인공들이 쓴 감사의 편지와 가장 정성이 담긴 선물을 준 으뜸선물이 공개된다. 으뜸 선물을 공개하자는 아이디어는 아이들의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아이들은 나의 의도(?)대로 물질적 가치보다는 아이들이 정성껏 그리거나 만든 선물들을 뽑아주어 늘 안도의 숨을 쉬곤 한다.
생일잔치를 할 때마다 선물에는 정성과 마음이 담겨야 하며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선물해야 최고의 선물이라고 강조를 한 때문인지 9년 전 순천북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날 우리 반 강진이는 자신이 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기장을 나에게 선물하였다. 선생님께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지......
나에겐 그 외에도 손때 묻은 강아지 인형이나, 4B 연필로 꼭꼭 눌러 쓴 초등학교 1학년의 6칸 공책, 우리 반 아이들의 어릴 때의 모습이 담긴 미니 사진 첩,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 소풍 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미니 액자, 나의 모습을 그린 그림 엽서, 반 아이들이 스스로 엮은 작은 문집 등 아이들 나름대로 정성과 마음이 담긴 선물이 많이 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 귀한 선물들을 가끔씩 꺼내 보면서, 난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을 배워갔던 생일 잔치를 떠올리며, 친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 고민하고 애태운 그 순수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추억한다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반의 생일 잔치야말로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만든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