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나의 학급경영기

독서학습발표회와 독서지도

pjss 2008. 6. 29. 15:54
독서학습발표회와 독서지도
                                                                                    『새교육』 한국교육신문사 2003년 6월호
                                                                                                     박점숙/ 전남 광양북초 교사


  우리 반은 매주 월요일 아침 시간에 '독서학습발표회'를 갖는다. 1 주일 동안 읽은 책 중에서 한 권을 선정하여 감상문을 발표하는 형식인데, 먼저 각 모둠에서 모둠원들이 발표를 하고 대표를 뽑아 전체 발표회를 한다. 내용 전달이나 느낌을 잘 발표한 아동을 독서왕으로 뽑아 반 전체 아동들이 200원씩 모아서 마련한 책을 상으로 준다.

우리 반 독서환경 만들기

  학년초가 되면 우리 반 아동 전체가 개인별로 사용할 수 있는 책꽂이를 교실 한 쪽 벽면에 마련한다. 책꽂이는 약속장에다 "책꽂이 희사자 희망"이라고 적어 보내면 어떤 때는 학부모가 희사를 해준 적도 있고, 없으면 내가 마련한다. 그대신 한 번 마련하면 그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학년이 바뀌더라도 내가 이동하는 교실로 옮겨가 사용한다.
  개인별 책꽂이가 마련되면 개인별로 읽을 책을 가정에서 가져오도록 한다. 책을 가져오게 할 때는 아동들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저학년일 경우엔 안내장을 내어 학부모들의 이해를 구한다. 읽을 책을 갖출 때는 되도록 여러 장르를 고루 갖추도록 하고 국어사전을 꼭 구비하도록 한다.
  학년초에 '가정에 있는 읽을만한 책은 몇 권이나 되는가?'하고 실태조사를 해 보면 의외로 가정에 읽을만한 책이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정에 없는 책을 억지로 가져오게 해서는 안되고 또 그 일로 아이들이 상처받아서도 안되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책을 구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전 학년도에 맡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학년말에 희사하도록 권장하여 모은 책이나 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책, 내가 가지고 있는 책 등을  빌려주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들이 가정에서 10-20여권의 책을 가져오고 교과서와 사전을 책꽂이에 꽂으면 우리 반 교실은 금새 어느 도서관 부럽지 않은 장서가 생기게 된다.
   책이 갖추어지고 독서환경이 만들어지면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한다. 아침에는 8시 30분 이전에 등교하여 9시까지는 책을 읽도록 하고,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방과 후 틈틈이 스스로 시간을 확보하도록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날마다 읽은 책은 독서카드에 읽은 날짜와 읽은 책의  이름 그리고 읽은 분량을 간단하게 적는다. 독서카드는 낱장 파일에 끼워 책상 속에 보관하고 하교 할 때 책상 위에 올려 두도록 하여 다음 날 등교하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미리 정해 놓아 시간을 아끼도록 한다.

독서학습발표회 준비와 '타이틀' 만들기

  독서학습발표회를 하기 위해서는 읽은 책의 독후감, 발표회 타이틀, 상품 등을 준비한다. 먼저 한 주일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책을 한 권 골라 독후감을 쓴다. 처음에는 월요일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준비하고 발표를 하였더니 너무 시간이 부족하여 형식적인 발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일요일에 가정에서 준비를 해오게 하였더니 아이들의 참여도가 낮고, 즐거워야할 주말이 오히려 짐스러워지니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 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주어진 양식에다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리고 토요일 아침 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독후감을 쓰게 한다. 그렇게 준비하여 월요일 아침활동 시간에 발표시간을 갖는다. 그러면 미처 마무리가 덜된 아이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가정에서 해오기도 하여 100%의 참여하게 할 수 있다.
  먼저 칠판 중앙에 붙일 독서 발표회 타이틀은 독서 모니터(학습 모니터 중의 하나임)가 A4용지를 4등분하여 각 모둠에 2장씩 나누어준다. 각 모둠에서는 [제 0 회 독서학습 발표회] 중에서 배정 받은 글자를 예쁘게 디자인한다. 독서모니터는 디자인된 글자를 모아 붙여 타이틀을 만들어 발표회 때 칠판 중앙에 게시한다.
  상품은 금요일 하루생활 닫는 시간에 독서 모니터가 예고하여 토요일엔 모두들 200원을 가져온다. 몇 년 전만 해도 100원씩 모아 3500원-4000원 정도면 책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학급당 학생수도 적고 책값도 올라 200원씩 모아서도  6000원짜리 책을 겨우 살 정도다.
   올해도 역시 우리 반에서 제3회 발표회 준비를 하기 위해 200원을 걷는데, 독서모니터인 은연이가 와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승호가 독서학습발표회를 탈퇴(?)한대요."
  수많은 해를 독서학습발표회를 해 왔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는 의아해하며 무슨 일인지 승호에게 물었더니 돈 200원이 아까워서 내기 싫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예를 들어가며 알아듣게 설명을 한 것은 둘째치고 승호는 다름 아닌 제 2회 독서학습발표회에서 독서왕으로 뽑혀 상으로 책을 받았던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흥분은 금물, 조용히 승호를 데리고 학년 자료실로 가서 제 2 회 때 책을 상으로 받았을 때의 기분을 생각해 보라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고 그랬다. 그래서 네가 낸 200원으로 모아 산 책이 또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니? 하며 타일렀더니 사정인 즉 200원을 깜박 잊고 챙겨오지 못했는데 도우미가 자꾸 내라고 채근을 하니 화가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승호와의 이야기는 잘 마무리가 되었으나 교사가 아무리 교육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200원이 그저 아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독서학습발표회 하기

  월요일 아침활동시간에 갖는 독서학습 발표회는 독서 모니터가 진행한다.
"지금부터 제 0회 독서학습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박수 짝짝짝∼) 모둠 별로 발표회를 갖기 바랍니다."
  모니터의 말이 끝나면 모둠 별로 도우미의 진행에 의해 발표가 시작되고 모둠원 모두의 발표가 끝나면 모둠 대표를 뽑는다. 모둠 발표가 끝나면 다시 독서모니터의 진행에 의해 의자를 갖고 교실 벽 쪽으로 빙 둘러앉는다.  모둠 대표들의 발표가 끝나면 대표가 아니더라도 발표하고 싶은 사람이 더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두의 발표 후 독서왕을 추천하여 정한다.
  이때 아이들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발표하는 것이 잘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들이 많다. 아이들은 자칫 친한 친구나 반에서 힘이 강한 아이,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독서왕을 결정하는 표결에 손을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잘 쓴 독후감을 많이 읽어주기도 하고 스스로 판단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친구들의 독후감이나 자신의 독후감에 점수를 매겨보게도 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아이들의 판단 능력이 생기면 또 늘 잘하는 아이만 모둠 대표가 되어 발표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3 번 독서왕이 되면 모둠 대표로서의 자격을 정지하고 오직 찬조(?)발표만 할 수 있게 한다. 그래도 1년이 지나면 모든 아이들이 독서왕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 학기에 두 번 정도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둠 발표회를 생략하고 모든 아이들이 전체 아이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독서왕이 뽑히면 독서 모니터는 시상을 한다. 타이틀과 반 아이들이 마련한 책을 상으로 받은 독서왕은 소감을 말하고 상품으로 받은 책도 소개한다. 상품으로 받은 책은 독서왕이 먼저 읽은 후 책꽂이에 꽂아두고 우리 반 모두가 돌려읽도록 하고, 독서발표회가 끝나면 반 아이들 모두의 독후감은 지정된 게시판에 게시하여 돌려읽는 기회를 갖는다.  

너희들이 있기에  

  몇 해 전 6학년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날도 아이들은 내가 교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제 32회 독서학습발표회'란 제목을 칠판에 붙여놓고 발표회가 한창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함께 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여 슬그머니 내 자리에 가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이제 모둠 대표들의 발표가 다 끝났습니다. 혹시 발표를 꼭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십니까?"
진행자의 말에 슬그머니 손을 드는 아이가 있었다.
순간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시선을 고정시킨 바로 그 자리에 수줍은 미소로 손을 들고 있는 상준이!

  5월말쯤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는데 왜소한 몸집,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어난 천진스런 얼굴에 말씨가 어눌(?)하던 아이. 이제 막 읽기·쓰기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더듬거리는 읽기와 서툰 글씨로 우리 반과 나를 놀라게 했던 아이. 다함께 부는 리코더 시간에도 '삐이-익' 소리로 화음을 망쳐놓곤 하던 아이. 그 상준이가 손을 든 것이다.
"그럼, 노상준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예, 저-는 김-마리아-를 읽-었습니다. 김- 마리아는..."
어느 구석에서 킥킥거리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교실은 이내 조용해졌다. 상준이의 발표를 듣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자신이 써 놓은 글씨를 읽어내는 데도 무척이나 힘들게 더듬거리는 상준이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우리 반 모두는 손에 땀을 쥐었다.
  드디어 기나긴(?)시간이 지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상준이. 아이들은 만장일치로 제 32회 독서왕으로 상준이를 뽑았다.
"비록 발표는 서툴었지만 상준이가 스스로 발표를 한 점과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자"며....
상으로 '제 32회 독서학습발표회' 타이틀과 책을 받아들고
"독서-왕이- 되어 기-쁩니다. 다-음에는 더- 발표를 잘-하겠습니다."
여전히 더듬거리는 말씨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감을 발표하는 상준이와 힘찬 박수로 격려하며 자신이 독서왕이나 된 것처럼 좋아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콧날의 시큰함을 감추기 위해 나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주었다.

그 날 나는 나의 교단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들아!
그 동안 내 기준의 잣대로 너희들을 바라보며, 늘 기대에 못 미친다고 꾸중을 하기 일쑤였데 너희들은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 크나큰 사랑을 키워오고 있었구나.
그래, 교실이 좀 시끄러우면 어떠니? 우리가 힘들게 가꾸어온 약속장 쓰기, 좋은 생각 듣기,
모둠 노래 발표회, 생일잔치, 이 주일의 노래 부르기, 스스로 하루 열고 닫기, 친구 칭찬하기....
그러한 모든 시간들이 오늘 상준이가 발표를 할 수 있게 하고, 또 너희들 모두가 이렇게 따뜻한 가슴을 지니게 했다면 교실이 좀더 시끄러워도 좋으리라. 발표를 유창하게 해야만 독서왕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약간 부족한(?) 친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독서왕으로 뽑아준 너희들을 틀렸다고 말 할 사람이 어디 있겠니? 오늘은 너희들이 스승이 되어 부족한 나를 가르치고 있구나.』